우리가 책으로 할 수 있는 일들
괴테가 나이가 많이 들어 한 소녀를 사랑한 일이 있었다.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청혼을 했지만 나이 차이 때문에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고, 결국 괴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비통함에 건강까지 잃었고 위중한 상태로 한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때 그를 찾아온 친구 젤터는 괴테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머리맡에서 같은 시를 21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그 덕인지 괴테는 아픔을 털고 일어났고, 나중에 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 자신에게도 감히 고백하지 못할 정도로 그토록 소중한 것을 자네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러 번 내게 읽어주는 것을 듣고 있자니 참으로 이상했다네.”
(레진 드탕벨, 문혜영 옮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펄북스, 2017년)
괴테는 무엇에 위안을 받아 병상에서 일어난 것일까? 매일 찾아와 시를 읽어준 친구의 정성, 괴테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 시의 내용, 친구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모두에 위로를 받았겠지만, 아마 독서 행위 자체가 준 힘이 컸을 것 같다. 바로 듣는 독서이다.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우연히 보르헤스를 만나 4년간 그에게 책을 읽어준 것으로도 유명한 알베르토 망구엘은 그의 저서 『독서의 역사』에서 “말없이 책장을 정독하는 독서 방법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는 정상에서 일탈한 것이다. 통상적인 독서는 큰소리로 떠들썩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당연히 최초의 독서는 청각독서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가 지금 당연시하고 있는 묵독은 조금 덜 떨어진(?) 방법이었다.
오디오북이 책 시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또 전자책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어쩐지 나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냥 출판의 한 경향으로만 바라보며 묵독만 고집했다. 전자책만 해도 내가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게 불과 일이 년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이니, 독서 방법으로 보면 난 참 보수적이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이용해 동네 뒷산(북한산)을 다니면서, 독서 방법이 획기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거다. 등산하면서 오디오북 듣기! 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운동이나 운전을 하면서 오디오북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알지만, 그게 나라서 신기한 거다.
오디오북 4개월차가 되니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1. 작가의 성별에 따라 남녀 목소리를 지정해서 들으면, 마치 작가가 책을 읽어주는 것 같은 친근함이 든다. 특히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2. 온라인 서점별로 목소리가 다른데, 목소리 종류는 예스24보다 밀리의 서재가 많다. 밀리는 전자음도 더 다양하고 성우나 연예인들의 목소리도 제공해준다. 그런데 나는 예스24의 전자음을 더 선호한다.
3. 잘 안 읽히거나 어려운 책에 도전하기에 좋다. 목소리가 주는 편안함이 생겨, 텍스트에 대한 거부감을 덜 수 있다.
4. 매일 1시간씩 4~7일을 들으면 웬만한 책은 다 끝낸다. 어려운 책일수록 성취감이 크다.
5. 읽다가 체크하고 싶은 부분은 하이라이트 기능을 사용하면 되는데, 이건 운동이나 산책시 살짝 불편하다.
6. 강연을 기반으로 만든 책이 귀에 잘 들어온다. 구어체 문장도 그렇다.
7. 나는 오디오북으로 문학은 잘 듣지 않는다. 철학책이나 심리학, 인문 도서가 더 좋다.
8. 남편의 경우는 한 권을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전자책으로 읽는 식으로 두 가지를 병행하는데, 나는 처음 시작한 대로 읽는다. 오디오북으로 시작한 것은 끝까지 듣기만 한다. 전자책이나 종이책도 마찬가지이다.
9. 듣는 독서에 한 번 빠진 이후, 운동을 하면서 음악을 잘 듣지 않게 되었다.
10. 한 권을 계속 듣기도 하지만 서너 권을 번갈아 듣기도 한다.
11. 오디오북은 당연히 구독 서비스로 신청해야 이익이다. 예스24는 5,500원, 밀리의 서재는 9,900원짜리가 적당하다. 예스 24는 약 1만 권, 밀리의 서재는 약 5만 권의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다.
12. 추천하는 철학책: 이진경, <삶을 위한 철학 수업>, <히치하이커의 철학여행>/ 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 안광복 <철학으로 휴식하라>/ 채사장 <지대넓얕> 등
사실 코로나19로 원치 않는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정말 너무도 힘이 들었다. 오랫동안 집에 있었던 게 처음이었던 데가, 왠지 모를 불안에 휩싸여 책도 잘 읽히지 않았다. 그때 멘탈이나 지켜보자고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고, 오디오북의 맛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보름 넘게 듣는 독서를 하고 나니, 다시 책이 손에 쥐어지더라. 친구가 21번이나 읽어준 시를 듣고 아픔을 치유한 괴테의 마음을 쬐끔 알 것 같다!
집이나 회사에 오가는 길을 종종 다르게 가보는 게 우리 뇌에 좋다지. 책을 읽는 방법도 한 가지만 고수할 게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알게 해준 몇 가지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