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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un 17. 2020

베스트셀러는 정말 읽히고 있을까?

우리가 책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중국 진나라 때 시를 잘 쓰는 좌사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런데 그는 얼굴이 못생기고 말도 잘 못해 사람들을 멀리하고 오직 글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한번은 제나라 임치라는 곳의 풍경을 노래한 <제도부(齊都賦)>라는 서사시를 썼는데, 한 유명한 시인에게 작품을 인정받아 낙양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좌사의 시를 읽기 위해 부지런히 작품을 베껴 썼고 그 때문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는 뜻으로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책이 호평을 받아 잘 팔린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남게 되었다. 


오늘 날의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린 책’이다. 책을 읽기 위해 앞 다투어 필사할 필요가 없으니 ‘팔린 개수’가 기준이 된다. 그 책들은 온오프라인 서점의 가장 좋고 잘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의 손을 가장 많이 탄다. 독자들의 호평과 혹평으로 냉온탕을 오가기도 하고, 훗날 그 시대를 보여주는 자화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많이 팔리는 것은 맞는데 ‘그 책들이 정말 읽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책을 읽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독서율은 2019년 기준 52.1%로,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47.9%에 해당하는 ‘읽는 사람’들은 1년에 한 권 이상 읽는 이들을 모두 합한 숫자라, 그중에 책을 습관적으로 꾸준히 읽는 사람들은 적고, 활자 중독에 가까운 헤비 리더들의 비율은 그보다 더 낮다. 그럼 47.9%에 해당되는 다수의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고를까? 


일 년에 서너 권 읽어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가 좀 어렵다. 책을 많이 읽어야 그 안목이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양적인 부분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 전제하에 그들이 책을 스스로 고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사자가 책을 고르기보다는 홍보인 듯 홍보 아닌 SNS를 보면서 구매 충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책들은 베스트셀러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하루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SNS 홍보에 들여 베스트셀러를 유지시키기도 한다.


과거 오피니언 리더들이 골라주는 책의 영향력이 컸다면, 지금은 SNS 관계망 속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들이 인기가 많고 그것이 구매로 이어진다. 읽고 싶은 마음으로가 아니라,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안 읽으면 왠지 뒤처질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책을 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구매한 다음 읽을지 말지를 선택하고 거기서 선택되지 못한 책들은 책장에 꽂혀 ‘읽은 것 같은 책’이 되는 운명을 맞는다. 그 책들은 베스트셀러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고르지만 내가 고르는 게 아닌 책의 구매력이 베스트셀러를 낳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피엔스』, 『총균쇠』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만 막상 끝까지 읽은 사람을 만나기 힘든 걸 보면, 베스트셀러를 많이 읽힌 책이라고 말하는 건 확실히 무리이다.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를 실제로 읽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책들이 진짜로 읽혔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더 많은 책들이 팔릴 것이고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 책들만 잘 팔린다는 건 어쩐지 개운치 않다.


책을 많이 자주 읽는 사람들 중에 베스트셀러를 조금 우습게(?) 보는 이들이 있다. 마치 클래식을 들으며 대중가요를 무시하는 다소 좁은 기호를 가진 분들이다. 사람들이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평가 절하한다. 이 역시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일 때가 있다.

집필을 앞둔 작가들에게 그 분야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에 대한 정보를 주면 그 책이 잘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그 책이요? 정말 내용 없어 보이던데.”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주로 베스트셀러를 사는 47.9%의 일부 사람들과 베스트셀러를 폄하하는 일부 독서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다’. 전자는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기호와 상관없이 구매부터 한 다음 읽지 않고, 후자는 사람들이 많이 샀다는 이유로 그 책을 한수 아래로 보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으로 읽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닌, 많이 읽히는 책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읽혀야만 다른 책들도 읽힐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책들도 많이 팔릴 수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독자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해마다 떨어지는 독서율을 잡을 수 있을까? 아, 52.1%라니...


자, 베스트셀러 사지 말고 이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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