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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님 May 17. 2024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미츄'를 읽고

아주 개인적인 독서기록


유독 보자마자 내 맘에 드는 책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인 을유문화사는 내가 보자마자 갖고 싶다 느끼는 책들을 참 잘 만든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많은 책 광고, 소개글 속에서 보자마자 맘에 들고 읽고 싶다 느껴지는 책들이 대부분 을유문화사 것이었다. 친구에게 선물 받아 더욱 소중한 '헤어질 결심' 각본집도 그랬고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미츄' 역시 그랬다.


이렇게 귀여운 책이라니! 제목마저 맘에 쏙 들었다.  들장미가 만발한 화창한 5월에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화가 발튀스가 어린 시절 잠시 키웠던 고양이와의 추억을 그린 그림을 모아 만들어졌다.  어린 소년의 어설픈 그림들이 책으로 출판하게 된 계기는 (발튀스라는 애칭을 만들어주었으며 발튀스 어머니의 애인인) 유명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덕분이었다. 물론 고양이와의 추억이 담긴 그림들은 매력적이었다.




릴케의 서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정한 말투로 독자들에게 발튀스와 미츄의 만남, 이별의 과정을 설명해 주면서 상실의 과정을 다른 에너지(미츄와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리는)로 극복하고 있는 발튀스 향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독자에게 쓰는 듯 하지만 실은 발튀스에게 전해주는 위로의 글이자 조언이 아니었을까.



         상실은 소유의 끝입니다.
상실은 소유를 확인해 줍니다.
결국 상실이란 두 번째 소유일 뿐이며,
그 두 번째 소유는 아주 내적인 것이며,
첫 번째와는 다른 식으로 강렬합니다.




그러고 보니 발튀스, 너도 그 점을 느꼈니? 더는 미츄를 볼 수 없겠지만, 너는 미츄를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말이야.
미츄는 아직 살아있을까? 고양이는 네 안에 계속 살아있지. 그 작고 태평한 고양이의 쾌활함은 너를 즐겁게 해 주고 또 네게 의무감을 주었단다. 그래서 너는 고통스러운 슬픔으로 미츄를 표현해야만 했던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그대로 저이며, 발튀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상은 무척 견고하죠.
다만 고양이가 없을 뿐.






릴케의 서문으로 '미츄'라는 그림책은 상실과 그것의 극복에 관한 책이 된다. 그리고 나는 이 글 읽고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상실감을 느꼈던  날들에 대해 생각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작년 11월

내가 상실하게 된 한 사람, 아빠를 떠올렸다.


릴케가 말하는 상실 이전의 첫 번째 소유!

잔잔한 내 삶, 나를 둘러싼 가족, 지인, 물건들 온전히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언제든 그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믿었을 시간들.

그 순간들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실 이후 두 번째 소유인 상태에서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아빠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불행하지만은 않았다고, 좋았던 기억을 계속 찾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편 단편의 기억을 정리한 글쓰기를 통해 나는 지금 두 번째 소유를 경험하고 있다.


비슷한 맥이라고 생각되는 박효신 3집 '좋은 사람' 노래의 가사 일부가 떠오른다.

" 이별이 내게 준 것은 조금 멀리 떨어져 너를 헤아릴 수 있는 맘"

 

아빠와 내가 서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내가 많이 생각하고 헤아릴게. 그리고 앞으로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를 소중히 생각하고 두 번째 소유, 상실(이후)을 맞이하더라도 절망하지 않을게.


나는 괜찮고 존재하고 있다.

다만 아빠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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