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님 Jul 11. 2024

응답하라 1997!

갑자기 튀어나온 나의 90년대


토요일에 발레를 보러 간다.

무슨 옷을 입고 갈까 어떤 가방을 가져갈까 즐거운 고민 중에 20대 중반 이후 들지 않았던 가방이 생각났다.


이 가방이 결혼하고 이사할 때마다 얌전히 옮겨지기만 한 이유는 토트백 보다 손이 자유로운 숄더백이나 크로스백을 좋아하는데 숄더끈 탈부착되는 부분이 약해져 수선했기 때문에 또 망가질까 봐 손이 안 갔다.


오랜만에 더스트백에서 나온 가방을 들고 거울을 보는데 묵직한 기분에 안을 봤더니 추억이 튀어나왔다!



교복 입고 천 원짜리 떡볶이 사 먹던 1990년대 후반... 고등학교 3년 추억의 일부가 있었다.

몇 년 전 친정에 갔다가 발견한 편지 꾸러미들은 다 버렸는데 꺼낸 적이 없는 가방 안에 또 다른 편지 꾸러미가 있었는지 몰랐네!

 



정말 그림을 잘 그렸던 위대한 예술가 친구야!

지금 어디에서 예술하고 있니! 너무 보고 싶다!!






1996년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스톰'이라는 브랜드의 카탈로그에 편지 쓰는 것이 유행이었다. 내게 편지를 준 누군가는 그해 인기 있던 스톰 카탈로그 중에서도 중요한 페이지(모든 모델들이 다 나오는 예쁜 부분)에다 편지를 썼다. 볼일이 있으면 삐삐를 치라고 했고 날짜를 단기로 썼다. 1996년 11월 4일에 받은 편지를 28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되어 너무 반갑다.





지금은 받기 어려운 이 손편지들!

얼마나 정성껏 썼는지 펜으로 테두리를 그리고 글자는 작은 동그라미로 꾸미기까지 했다.




어머나!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에 아직도 빳빳한 회수권 한 장이 붙어있었다.


10장 붙어있는 회수권 구입해서 절묘하게 잘라 11장을 만들어 쓰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의 친구는 정직하게 잘라 쓰던 멋진 청소년이었고, 지금은 열심히 운동해서 성난 등근육을 가진 정말 멋진 여자다.


그 시절 강타의 아름다운 그녀로 불려지고 싶어 했던 그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회수권 한 장에 270원인 것만 보이나 보다. 등근육이 멋진 내 친구는 혹시 T??



저 스티커북 안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아이들 사진과 이름도 있다. 스티커 사진을 서로 교환하며 우정 아니 인기의 척도를 가늠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수첩 맨뒤에는 친한 친구들의 삐삐번호가 적혀있었다.


삐삐가 울리면 얼른 공중전화에서 확인해야 했기에 항상 주머니 속에 동전을 몇 개 정도 갖고 다녀야 마음이 놓였던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 내 손에 있는  스마트 폰이 괜히 얄미워진다. 우리들의 낭만이 가득했던 그 시간은 다시 만날 수 없어서 더욱 그립다.






생각지도 못한 편지꾸러미 속에 들어있던 1997년 청소년 회수권 한 장이 나를 1990년대로 데려다줄 것만 같아 약간은 설렌 이 밤.


오늘밤 꿈속에서 저 회수권을 들고 1997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싶다.


거리마다 최신가요 테이프를 파는 리어카가 있던, 인생 네 컷이 아니라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작은 스티커가 12장쯤 나오는 스티커사진관이 있던 번화가에 가는 버스를 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엉조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