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 사이 어디 즈음
집 대청소의 시작과 끝
나는 뼛속부터 맥시멀리즘이다.
※ 맥시멀리즘이란?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과장된 형태의 문화예술적 경향
기숙사 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약을 챙겨도 목감기약, 콧물감기약, 몸살감기약... 종류별로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고, 자취 생활을 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으면 종류별로 갖고 싶어 했고, 어떤 색에 꽂히면 모두 그 색깔로 맞추고 싶어 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옷을 여러 벌 살 수 있는 홈쇼핑을 그래서, 내가 이토록 애용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쉬이 이해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특이하고 화려한 건 꼭 시도해봐야 하는 부분이었다. 블링블링 보석으로 꾸며진 옷, 신발을 보면 주체하지 못하고 구매하곤 했었는데...
한 번은 장례식을 갈 일이 생겼는데 무난한 검정 옷이 단 한 벌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그 심각성을 새삼 깨달았었던 기억이 난다. ㅡ나의 검정 옷들은 레이스는 약과였고, 가죽, 메탈, 큐빅 등 온갖게 달려 있었다.ㅡ
결혼하고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ㅡ분명 꽤 버리고 온 것 같은데도ㅡ 일주일이 지나도록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았던 맥시멀리즘의 끝장판이었던 내가, 2017년을 맞이하여 엄청난 결심을 했다.
미니멀리즘을 선언하다
※ 미니멀리즘이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
최근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면서 이에 관련된 책들도 우후죽순 출판되고 있다. 사실 미니멀리즘을 다짐하기도 전에
베스트셀러라고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도 있었다. 그러던 중 원데이 클래스로 알게 된 수채화 캘리그래피 선생님이 그림을 그렸다는 한 미니멀리즘 책을 접하게 됐다.
버리니 참 좋다
일본의 어느 젊은 부부가 직접 시도하고 실행한 미니멀리즘의 이야기를 그림일기로 그려 놓은 내용의 얇은 책이었다. 짐이 쌓여있는 모양과 장소가 우리 집과 비슷했고 그로 인해 집안 일도, 짜증도 늘어났다는 부분도 우리 부부와 많이 닮았다고 느껴져서 이 책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물건을 둘 장소가 있으면 자꾸 물건이 생긴다.
나의 오랜 맥시멀리즘 생활로부터 비롯된 유일한(?) 장점이 하나 있다. 공간 구석구석에 잘도 정리해 넣어둔다는 것이다. ㅡ이 능력은 특히 여행 가방을 쌀 때 유용하다.ㅡ
책을 다 읽고, 집을 한 바퀴 둘러봤다.
붙박이 장롱(무려 2개), 서랍장, 책장 등등... 물건이 워낙 많으니 장식장도 서랍이 3칸이고 협탁도 서랍이 있는 것으로 샀었다.
지금 당장 물건을 많이 버리고 비워내더라도 이 많은 가구들을 채울 물건을 또 사들일 것이란 부분,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냥 '나'였다. ㅡ안 봐도 비디오...ㅡ
옷 방을 없애기로 결심하다
신혼집을 구상할 때, 나도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드레스룸을 갖고 싶었고, 방들 중 한 방을 옷 방으로 꾸몄었다.
그런데...
아침에는 분주하고 저녁에는 게으른 우리 부부는 옷은 안방 장롱에 있는 것 중에서만 골라 입었고 결국 입는 옷들은 안방에서만 돌고 돌았다.
결혼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즉, 사계절을 한 번씩은 다 보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많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옷들은 모두 옷 방 옷장에 있었다.
옷 방을 없애기 위해서는 옷장을 없애야 하고, 옷장을 없애기 위해서는 옷을 없애야 한다.
행동 개시 : 옷 버리기
옷 방의 오래된 옷들을 정리하면서, 적어도 두세 번씩은 입어보고 고민했던 것 같다.
멀쩡하지만 유행이 지나 입히지 않았던 옷,
비싸게 주고 샀지만 살이 쪄서 못 입는 옷,
잘 맞지만 비슷한 다른 옷이 또 있는 옷...
둘째,
쉽게 버리지 못할 것 같은 물건은
한 번 더 고민하기 위한 상자에 넣어보자.
필요하면 그 상자에서 다시 꺼내게 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건 과감하게 버리자.
비싸게 사서 아껴 입느라고 안 입었던 옷은 이제부터라도 아끼지 않고 막 입어야만 하거나, 아니면 앞으로도 아끼느라 입지 못할 것이다. 옷이 이토록 많아지기까지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로 과소비를 해온 것도 있지만 저 두 가지 중 어느 하나 선택하지 못한 것도 안 입는 옷이 늘어나기만 하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버리기 전 단계를 위한 상자이다.
버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요하는 물건이 있다면, 이 상자에 담아두면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과 욕심이 생기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홈쇼핑 등에서 색깔, 종류별로 구비해 두었던 많고 많은 내 옷들은 그렇게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었다.
※ 헌 옷 정리 Tip
헌 옷이지만 그냥 버리기 아까운 멀쩡한 옷들은 조금 더 의미 있게 쓰고 싶어 모두 '기부'하기로 했다. 그중 회사에서 봉사활동하러 가곤 했던 "아름다운 가게"를 이용해 기부했고, 기부금으로도 인정해주니 일석이조였다!
욕심에는 끝이 없다
간직하고 싶었던 물건들이 많았던 나는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 캐릭터의 네임카드, 초등학교 체험학습 때 직접 만든 전통한지 한 장, 아빠가 내게 처음으로 사 주신 손목시계, 심지어는 색종이, 스티커까지 모두 모아 두고 있었다.
셋째,
추억은 우리 마음속에 기억되어 있다.
추억의 물건을 모두 간직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이 구문을 읽는데 나의 보물상자가 떠올랐고, 나의 유년시절, 질풍노도의 10대를 대표(?)할만한 수많은 기념품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특히 이 부부의 이야기에서 큰 공감을 했던 부분이다.
난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이 많으면서도 원하는 바가 몹시 명확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실행으로 옮겨야만 성에 찼다. 다 해내지 못해 버거워하면서도 아까워서 남 주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이 많은 추억과 물건들을 품고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신랑과 다녀왔던 가수의 콘서트 기념품도 우리 둘의 마음속에, 머릿속에 즐거웠던 기억으로 잘 간직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ㅡ심지어 이 기념품, 고장 나서 되지도 않는다.ㅡ
D.I.Y라고 쓰고 사재기라고 읽다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안 해 본 취미가 없을 정도이다.
흔한 십자수, 손뜨개질, 다이어리 꾸미기부터 최근에는 동양화(민화), 목공, 캘리그래피까지...
그 결과 나의 책상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아니라,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물 거치대가 되어버렸다. ㅡ난 재료만 사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련 서적까지 구매하는 쓸데없는 열정까지 엄청난 편이었다.ㅡ
내가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작업방, 신랑이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쉴 수 있는 동굴방,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방음방, 아이들이 생긴다면 우리 꼬맹이들의 놀이방도 있는 그런 집...을 나는 아직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좁은 서재에 없는 공간도 만들어 채워 넣으려 했다.
지금껏 해왔던 취미 활동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닌 취미 활동을 실제로 하기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계속할 취미와 그만 둘 취미를 거르기로 했다.
내 색깔이 생긴다는 것
어려서 나는 엄마와 함께 밀리*레 같은 복합쇼핑몰을 자주 갔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엄마 손잡고 쇼핑을 즐기다 문득 어떤 매장은 블라우스를, 어떤 매장은 숙녀복을, 또 어떤 매장은 청바지를 중점적으로 파는 것을 보고 수십 개의 매장들도 각각의 장르가 있고 색깔이 있으며 그 속에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통일된 컬러, 디자인이 더 깔끔해 보인다.
책의 일본 부부는 집안의 컬러를 정돈했다고 한다. 화장실 수건 색깔과 같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통일되면 집이 더 깨끗해 보인다고 했다. 종류별로, 색깔별로 골고루 소유해야 했던 나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입돼있는 인터넷 쇼핑몰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최근에 내가 접속하는 쇼핑몰이 딱 두 군데뿐이라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놀란 적이 있다. ㅡ물론 인터넷 쇼핑몰 특성상 한 곳에서 충분히 다양한 제품을 다루기도 하지만...ㅡ
내가 선호하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 그 무언가가 브랜드이든 디자인이든 색깔이든 나를 나타낼 수 있는 키워드가 생긴 것이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제 각각 특성을 가진 인테리어 제품들이 오히려 "이곳이 바로 우리 집"이라고 칭할 수 있는 색깔, 키워드를 없애고 있었다.
심난하다?
시어머니는 처음 우리 집을 보고 "심난하다." 셨다. 정리를 열심히 했는데도, 역부족인 걸까. 어머님 댁의 물건들도 매우 적은 편은 아닌 것 같았는데 어쩌다 난 정리 못하는 지저분한 며느리가 되었을까.
아마도 여기저기 제각각이었던 디자인, 색감과 또, 어머니와 내가 가장 다른 점 중 하나인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 때문이었을 것이다. ㅡ어머니는 안에 정리하여 모두 집어넣는 편이시고, 나는 바깥에 예쁘게 나열/진열해놓는 꾸밈이 많다.ㅡ
아기자기하고 예쁜 친정엄마의 집도 난 참 좋지만,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시어머님의 집처럼 나도 지금보다는 덜 심난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 비우기를 마치며
사과박스 크기 기준 17박스의 옷과 식기류 등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했고, 50리터 쓰레기봉투 7개에 달하는 물건을 버렸다. ㅡ책의 일본 부부는 100리터 봉투 13개를 버렸다고 했다.ㅡ
더 고운 가루를 내기 위해서 체를 여러 번 거르듯이 더 실용적이고 미니멀함 나의 삶을 위해서 여러 번의 대청소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ㅡ닥터 하우스에 나온 한 미니멀리즘 주부는 지금의 완벽한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실행하기까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