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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개미 Nov 10. 2020

가끔씩 슬프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연말이 다가오자 모두들 꿈을 찾아간다.

"주임님, 잠시 미팅 괜찮으실까요?"

예의 바르지만 무서운 말.

어떤 상태를 참다가 나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 일까?


그는 나와 입사 동기였고 동갑이다. 3년 전 회사에 처음 왔을 땐 인원이 많지 않아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곤 했다.

입사 후 첫날, 다들 어색한 공기에서 서로의 전 회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면접 때 어땠는지 서로 공감대를 열어가는 중 그는 보통 회사 첫날이면 하지 않을 말을 했다.


"아, 저는 디자이너이고 싶지 않고 웹 코딩으로 일하고 싶은데 결국 웹디자이너로 뽑혔어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사람들은 회사에 더 오래 있기 전에 빨리 나와서 그 분야에 이직하라고 하지만 취준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지금 어떻게 할지 고민이에요. 다들 적성에 맞게 들어오 셨나요?"


입사 동기들과 나도 얼마 오래 보지 않은 그를 만류했다. "취준생 진짜 힘들잖아요. 1년 정도 지내면서

가고 싶은 분야 공부하면서 돈 버는 것은 어때요?" 그렇게 우리는 1년을 참고 2년을 참고 그리고 3년을 같이 버텨왔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하지만 그는 줄곧 나에게 장난식으로 말했다. "이 경력은 물 경력이에요. 다 시간 낭비예요.

올해는 꼭 퇴사할 것입니다." 장난식으로 말하면

나도 "아 왜요 완전 디자인 잘 하시는데 뼈자이너시면서~~!"라고  장난으로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계속 그 말을 하는 그에게서 진심이 느껴졌고, 내가 고민하는 것을 대신 말로 표현해주는 사람 같았다.


물 경력


하지만 내가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하자 그는 그런 진솔한 말을 들려주는 수는 줄게 되었다.

같이 사원이었을 때랑 아마 다르게 느껴졌나 보다. 아님 서로 일로만 대화할 일이 많아진 것일 수도 있고

뭐, 회사가 만든 분위기겠지? 결국 나는 그의 진실을 다시 한번 오늘 최종적으로 듣게 됐다.


(잠시 미팅)


나: "무슨 일이세요? 무섭게~"

장난으로 떨면서 말을 건넨다.


남자 동료: "이제 말할 때도 됐고, 결정할 때도 된 것 같아요. 주임님도 아시겠지만 저 회사 온 첫날부터 고민 많이 했잖아요. 아무래도 저 올해까지만 다닐 것 같습니다."


나:"느낌으로 짐작했지만 그래도 저랑 내년까지 같이 한해를 채워요...! 떠나지 마세요. ㅠㅠ 요즘 코로나로

취업도 어려운데, 이직 준비하면서 회사 다니고 다른 회사 정해지고 그만두는 것은 어때요?"


남자 동료: "맞이요. 그래서 저도 사실 고민 많이 했어요.  가족들한테 욕도 엄청 먹었어요. 갈 곳 정해지면 그만두라고. 근데 알다시피 그렇게 3년이 지났어요. 우리 내년엔 31살이잖아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려고요. 사실 그때 빨리 그만두고 원하는 일을 했어야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요. 지금 코딩 공부 중인데 솔직히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는 게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다 잃어가는 기분이에요."


나:"우리 나이... 서른한 살.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다 잃어가는 느낌... 그렇죠 알죠 그 마음."


주임으로서 그를 잡아, 회사에 있게 하는 게 맞지만(이성),

그의 말이 너무 공감이 가 마음속엔 이미 설득당했다.

회사나 내가 그의 인생을 평생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잡을 수도 없었다. (감성)


남자 동료: "그래서 주임님은 여기 계속 다니실 거예요?"


그 말은 나를 반성하게도 하는 말이고 벙 찌개도 하는 말이었다. 정해진 곳만 계속 따라가면 되는 '편안함'과

월급이 주는 '풍족함'에 잠시 잊었던 나의 먼 미래와 꿈. 잠시 자각하고 있었다. 이 생활이 영원할 거라고

문득 두렵기도 했다. 이 생활이 끝나고 과연 어떤 것들이 남게 될 것인가? 시간만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아닐까?

오랜만에 누가 나에게 '꿈'을 물어보는 순간이다. 내 먼 미래. 꿈?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일까?


나: "사실 저의 꿈은 회사에서 이루지 못해요. 그래서 이직을 해도 똑같을 것 같아 더 있을 것 같긴 해요."


같이 외근을 나갈 때면 우린 미래, 고민,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도 아마 기억할 것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은 '회사'에서 할 수 없고 오롯이 '나 혼자'해야 한 다는 것.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나만의 브랜드, 요가 선생님, 강연자

나의 꿈의 형태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회사에선 돈을 벌고 나만의 것들은 혼자 일궈나야 한다는 것.

그래서 동료들이 나에게 이직 이야기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회사에선 제 꿈을 못 이뤄요.


그럼 그만둬야 하는 것일까? 아니지. 너무 일러. 그리고 사실 무서워.

3년 만에 용기를 낸 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말을 나에게 장난이 아닌 진지하게 말하기까지 수도 없이 고민을 했을 것을 알기에 응원밖에 할 수 없었다. 동료로서는 더 같이 일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위해서 익숙한 무언가를 그만두고, 새로운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으로 빠져들려는 그의 눈에선 내가 그간 잊었던(잃었던) 눈빛을 보았다.

'그래, 나는 내가 나열한 다양한 형태의 꿈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던가?'

3년간 함께한 동료의 선포와 나의 자만이 동시에 내 머리를 게 내리쳐 에너지 퍼센트가 확 줄어버렸다.


(내 자리)


후하. 미팅 후에도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 '털썩'앉았다.

그때 내가 드디어 자리에 앉을 것을 알았는지 단톡 방 메신저가 하나 떴다.


┏안녕하세요. 주임님, 00님 향후 디자인 기획 및 팔로우업은 다른 분께 인수인계하기로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중국 판매 부서 신입 분도 이번 달에 그만둔다고 하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인가? 어딘가로 떠날 것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또한 번 마음을 펀치 하고 지나간다.


나와 동료도 그녀를 응원했다. 사무적인 메시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원으로 말이다.

그러자 그녀도 그 응원에 감사의 말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가끔씩 슬프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00님이 나갔습니다.'

 

응원의 말과 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급히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차갑게 남기고 떠났다.

그녀는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분이 셨다. 일부러 시적으로 메시지를 썼는지 한국말이 어눌해서 저런 말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 갔았다.


연말이 다가오니 모두들 꿈을 찾아가나 보다. 오늘은 처음으로 누군가에 퇴사 발언을 들은 하루였고, 또 떠나가는 이의 마지막 메시지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떠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곳에 남은 저에겐 미래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꿈을 찾아가는 동료를 보니, 남아있을 자신이 울적해지는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그들도 저도 꼭 원하는 방향으로 잘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매일은 가끔씩 슬프고 항상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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