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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네마 Jan 24. 2019

프랑스 파리를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있던 곳을 떠나는 것도 떠나온 곳을 떠나는 것도 왜 이렇게 마음을 어지럽게 할까.



늘 프랑스 파리에 대한 어느정도의 동경이 있었다.

사람들도 영화도 음악도 문학도 도시도 언어도 패션도

어딘가 멋스러운 면이 있다고 해야되나.

파리에 대한 나의 환상에 대해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건 다음번에 풀어보기로 하고,

여러모로 오래 전부터 꿈꾸던 도시였지만 이상하게 떠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요새 이런저런 기회로 짧게나마 갈 수 있을 법한 상황이 왔고

자꾸만 지금 가지 않으면 다신 엄두도 못 낼 수도 있다 싶은 마음이 들어

출국 이틀전에서야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떠나버렸다.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그토록 염원하던 파리를 향했지만,

여행 첫날부터 '그러게 무모하게 떠나오지 말랬지?'라고 누군가 비웃기라도 하는 것 처럼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 누군가는 아마 자신 없던 내 자신의 목소리였을까.

혼자 낭만적인 여행을 즐겨보겠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만 같아 일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나 가자' 싶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여행기간을 채워야했다.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구나'를 깨닫고 나니, 새로운 플랜B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그 상황에서 내가 그나마 포기해야 했고 포기할 수 있던 것은 단 하나.

'혼자서 여행하기' 라는 목표 가운데 '혼자서'를 포기하자.


그리 마음을 먹고

극도의 개인주의에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데,

울며 겨자먹기로 여행 동행들을 구해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일주일.

다리가 얼얼할정도로 파리의 구석구석을 정말 열심히도 다녔다.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환상적이었고, 그 곳에서 숨쉬고있는 것 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파리는 은근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도시라고들 하던데

나에겐 내가 상상하고 꿈꿨던 그 자체였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순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에 앉아있는 내게 그런 곳곳의 풍경보다 더 강하게 떠오르는 것은


모든 골목이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들을 낮이고 밤이고 온종일 걸으며 대화하고,


매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공유하고 (한식당 '순' 최고)

빛이 쏟아지는 에펠탑을 바토무슈에 타서 함께 보고,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의 기념품 샵에서 다같이 갑자기 오르골을 잔뜩 쓸어오고,

전시회를 다니며 아는 내용은 서로 설명해주고,

변덕스러운 파리 날씨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10센치도 안되는 처마 아래로 뛰어가 겨우 몸만 간신히 숨기고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박장대소하고,

황홀하고도 가슴 벅찬 라라랜드 재즈바에 가선 쭈뼛거리던 서로를 끌어내 처음 배운 스윙댄스를 같이 추었던

줄곧 함께 다니던 그 사람들.


그렇게 함께한 순간들이 장소 곳곳에 박혀 여행지 그 자체보다 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혼자 다녀왔더라도 충분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왔겠지만, 이렇게까지 여행지를 다시 떠나는 마음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 우리가 '함께' 나눈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과 행복을 오롯이 느끼고 공유할 수 있었던 나의 여행.

일행들이 줄곧 했던 말처럼 꿈과 같은 여행이었다.

깨고 싶지 않았던 좋은 꿈.

다시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가는 마음이 아직 많이 싱숭생숭하고 어지럽지만 돌아가야지.

하지만 아마 앞으로 살면서 수십번의 여행을 더 하거나 심지어 같은 곳으로 다시 온다 하더라도,

이번 여행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고맙습니다. 파리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또 당신들을 만나게 해준 소매치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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