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로 쓰기 좋은 마음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힘들고, 지치고, 우울한 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것 같고, 실방귀 뀌었는데 폭풍 소리가 나는 날.
나는 부탁하고 빌고 애원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도 싫고, 밑지는 일도 하지 않으려고 산다.
그런데 사회생활이라는 건 그런 나의 결심을 자주 무너뜨린다.
거래처…라고 불러야 할까.
보증기관 과장의 작정한 혀에 무참히 폭행당했다.
물론 그 과장이 짜증 낼 만한 사정도 안다.
얼마 전, 우리 쪽 말은 1도 들어 먹지도, 들을 생각도 없는 진상 고객에게 대출 불가 사유를 대면서 "보증서 발급을 못 받아서."라는 말이 나왔다가 보증서 심사기관 쪽이 초토화됐단다.
우리에게 와서 했던 그대로 소리 지르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고. 그것도 네 번이나 쳐들어갔단다. 그 사이에 당연히 우리에게도 똑같이 쳐들어왔다.
그녀는 대구와 영천을 홍길동처럼 왔다 갔다 하며 두 기관을 뒤집어놨다.
그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1번이 시킨 대출 때문에 무리한 보증서 심사를 내가 올렸다. 사실 올리고 싶어 올린 건 아니다. 시키니 까야지.
그것에 열받은 보증심사처 과장이 내게 드레스덴 융단폭격을 가했다. 왜 우리한테 짬을 때리냐. 계속 그러면 그쪽이랑 거래하겠냐. 앞으로 이 건에 대해서 전화하지 말고 통보 기다려라.
두다다다, 두다다다.
그저 작게 예, 예 대답만 했다.
통화 내용을 책임자들에게 보고하고 나니 마음이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시킨 책임자의 마음도, 쓴소리를 쏟아낸 보증처 과장의 마음도 다 이해한다.
이게 내 고질병이다.
영원한 숙제다.
무슨 일이든 적당히 납득하고 만다.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네 말도 옳구나.” 하는 황희 정승의 태도가 되어버린다.
감정 이입을 잘하고(소위 말하는 역지사지) 원인-결과를 잘 꿰는 성격은 이런 곳에서 나를 갉아먹는다.
그래도 가끔은, 단 하루만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아보고 싶다.
숨 막히게 울고, 소리 지르고, 다 쏟아내고 나서야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은 날이건만.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나는 태연한 척 웃는다. 속은 썩어 들어가 퇴비로 주면 딱 맞을 지경인데.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꼬우면 삼성·엘지 들어가지 왜 여기 왔냐”던 10년 전 사수의 말이 떠오르는 오후다.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불금은 불금이다.
활활 타오른다.
얼굴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