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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아무래도 이번 주는 글렀어..

연재 무단 펑크 내고 쓰는 아무말

by Outis

살다 보면 그런 때 있지 않습니까?


막 큰일이 생긴 건 아닌데, 자잘하고 신경을 건드리는 일들이 몰아서 온다거나 하는, 그런 때.

심신이라도 멀쩡하면 하나하나 처리할 텐데, 몸도 둔해지고 정신도 런던 스모그만큼 흐릴 때.

이 둘이 크로스! 하면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열리지요.


아무도 안 물어보셨지만, 이번 주 제 상태가 딱 그렇습니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걸 알면서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침대에 머문다거나(그래놓고 불과 몇 분 전의 자신을 저주한다),

아침부터 쌀을 와락 쏟지를 않나(그나마 자신 있는 것이 전기밥솥에 하는 흰쌀밥이거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도시락을 싸다가 당근 대신 손가락을 썬다거나.


좀처럼 피가 멎지 않는 손가락을 지혈하는 동안 몰려드는 그 좌절감이란.

'아, 망했네. 이제 도시락은 어쩌지?'


이래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건 미리미리 해두란 건가 봅니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시간이 평소처럼 늘 있는 건 아니란 거겠죠.


밴드로 칭칭 감고 간단한 샌드위치로 메뉴를 돌려 도시락은 해결했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실까 봐..


애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잠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자니 슬금슬금 떠오르는군요.


(위에도 그랬지만 이 이후에도 별 내용 없습니다. 다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있으니, 싫으신 분은 여기서 '뒤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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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살이 썰리던 그 느낌.

몸의 반응이 둔해진 바람에, 칼이 피부 안으로 들어갔다는 걸 알아차리고도 멈추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서 그 과정을 다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순간 드는 생각은 '와, 흡사 다른 단백질 재료를 썰 때와 비슷한 그 감각이네'였습니다.

비명은 지르고 있었지만, 아파서라기보단 그저 가족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칼을 빼고, 손가락을 움켜쥐고, 일단 수돗물로 세척하고서 손가락으로 누를 때는 그저 짜증만 났죠.

'피가 언제 멈추려나.. 이제 도시락은 어쩌지? 달리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더라?'


날이 조금 깊이 들어갔지만, 고작 칼에 벤 것뿐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긴 한데요, 어쩐지 양가감정이 듭니다.

'그래도 감각을 느끼긴 했구나. 많이 좋아졌네'와,

'아직도 감각이 둔하구나. 이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어쩌면..'.


저는 한때 완전히 무감각해져서 위험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겁이 없었달까.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죠. 전혀 아플 거 같지 않았어요.

진짜 심각했던 그때 일을 냈으면, 하나하나 다 느끼면서도 괜찮았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며칠 전, 첫째인 아들이 물었습니다.


"엄마는 OO(둘째 이름)이랑 사이가 좋은 거 같아요?"


"글쎄.. 내가 대답할 일은 아닌 거 같다. OO이 생각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살가운 엄마는 아니잖아. 어른스럽지도 못하고."


"응." (너무 바로 대답하는 거 아니니, 아들아..)


"... 그러는 너는 어때? 너랑 내가 사이가 좋은 거 같아?"


"글쎄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관계라는 건 양쪽의 생각을 다 들어봐야 하는 거니까. 따라서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먼저 알아야죠. (씨익)"


"... 영악한 놈 같으니."


대답을 회피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와 위의 두 아이는 과장 좀 보태서 가까운 비즈니스 관계? 그 정도에 머물고 있지 않나..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무감각함. 그것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은 다가가지 못하는 저.

결국 이게 모든 일을 망칠까 봐, 솔직히 두려워요.


"아무래도 난 나 스스로는 구하지 못할 거 같아."

언젠가 갑자기 떠오른 이 말을, 주문처럼 내내 읊었던 이 말을, 머리를 감싸 쥐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다.'

뒤따른 기특한 생각. 지겨운 착한 아이 증후군. 이것도 결국 방어기제일지도 몰라요.

자기 자신의 상상 속에, 이야기 속에 숨어서.

자신에게 뭐라도 의미를 주고 싶어서. 그러지 않으면 너무 허탈하니까요. 허탈감에 빠지면 그땐 무감각함에 완전히 잠식되어 버리니까.


저 생각 자체는 사회에 쓸모가 있을지 몰라요.

문제는 제 이야기라는 것이 과연 쓸모가 있을 것인가겠죠.

이건 모르겠어요.


'그럼 나는 쓸모가 있는 건가?'

그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질문만 반복할 뿐.



싱크대에 서서 한껏 쓸모가 감해진 손가락을 누르고 있던 저.

그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 섞이지 않은, 그저 직관적인 이미지.

사실과 달리 덩그러니 혼자 선 뒷모습과, 왜곡된 외로움.


결국 내 현주소는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터졌습니다.

너무 웃어서 그런지 눈물까지 나더군요.


네.

아무래도 이번 주는 째야겠어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단으로 휴재를 감행한 저의 변명을 들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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