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

by 밍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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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간다는 건 어쩌면 껍데기만 늙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은 시간이 지나며 변하지만, 그 안에 있는 영혼은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된 순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이 껍데기 안에 숨어 있는 어린아이를 잘 돌보아야 한다.


슬플 때는 왜 슬픈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화가 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어릴 적 상처나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니면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인지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내 안의 어린아이가 불쑥 튀어 내는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곳에 오래전에 받은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더 깊어지거나, 아물어 흉터로 남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존재를 하나의 어린아이처럼 생각하려고 한다.

그 아이를 다독이고, 보듬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아이와 나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생기고, 그 관계는 결국 나의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만약 내 안의 그 존재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고, 그 아이가 무너지면 나도 함께 무너지는 존재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 아이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

가끔은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사 주고, 지금 감정은 어떤지, 속상한 일은 없는지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한다.

상처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가 진심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일에는 흠뻑 빠져도 좋다.

그렇게 내 안의 어린아이를 돌보다 보면, 점점 나 자신을 더 사랑스럽게 여기게 되고, 누군가의 뾰족한 말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반대로 내 안의 소중한 존재를 가장 뒤로 미뤄 두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남을 맞추느라 감정 노동을 하고, 밥도 대충 때우며 나의 상처를 외면한 채 “내가 못나서 그래”라고 스스로를 탓한다면 말이다.


그건 어쩌면 나를 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반려동물을 버리는 일보다 더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자신을 외면하다 보면 우울감이 깊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결국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껍데기보다 내면을 더 소중히 돌보며 살아가겠다고.


물론 외모를 가꾸는 일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안의 세계를 가꾸는 일이다. 피부를 관리하고 외모를 꾸미는 데 쓰는 시간과 돈의 일부라도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이해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조금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나는 껍데기가 아니라, 내 안의 세계를 꾸준히 가꾸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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