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사기 이야기
왜 어린 나는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20살,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대학 생활에 겨우 적응해가던 시기, 그날은 일찍 종강을 해서 기분 좋게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땀을 뻘뻘 흘리며 설문지를 나눠주는 아저씨 한 분이 보였다.
“학생, 이것 하나만 해주세요.”
다급한 목소리에 괜히 이 더운 날 고생하신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설문지를 받아 들었다. 화장품 관련 설문조사라며 간단히 작성하면 선물도 준다고 했다. 설문도 하고 선물도 받는다니, 그때의 나는 이게 꽤 괜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피부 타입, 화장품 사용 비용 같은 것들을 적어 제출하자, 아저씨는 고맙다며 샘플을 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별 의심 없이 따라간 곳은 한적한 건물 뒤 주차장이었고, 그곳에는 봉고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날씨 덥죠? 차에 들어가서 좀 쉬세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그때의 나는 별다른 경계 없이 차에 올라탔다. 막상 타고 나니 그제야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는 화장품 테스트를 해준다며 손에 이것저것 발라주고, 자기네 제품이 얼마나 좋고 고급인지 계속 설명했다. 그리고는 회원 가입을 하면 50만 원에서 60만 원 상당의 화장품을 준다며 가입을 권유했다.
그 당시 그 돈은 지금으로 치면 한 달 알바비 정도였다. 편의점 시급이 3천 원대였던 시절이니까, 꽤 큰 금액이었다. 그런데도 ‘이만큼 준다’는 말에 혹해서,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가입서를 작성하고 주민등록번호까지 적고 지장까지 찍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믿기지 않는 행동이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집에 와서는
“공짜로 이렇게 많이 받았다!”며 신나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언니가 바로 화를 냈다.
“너 진짜 바보야? 그거 사기야!”
언니 말대로 검색해보니 같은 수법으로 당한 사람들이 이미 많았다. 그리고 한 달 뒤, 정말로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쓴 건 ‘회원 가입서’가 아니라 '후불 결제 계약서'였던 것이다.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거다.
세상이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친절이 항상 좋은 의도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
나는 울면서 다시 그 아저씨를 찾아갔다.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상황은 꽤 무서웠다.
서류를 돌려달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보여준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까까지의 친절한 얼굴은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이유부터 생각하게 되었고, 친절 뒤에 숨은 의도를 한 번 더 의심하게 되었다.
20살이 된다는 건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더 이상 학교라는 울타리도 없고, 나를 지켜주는 선생님도 없고, 모든 선택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는 시기. 그때 처음으로, 세상은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돌이켜보면 어리숙했고, 순진했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 여름은,
나에게 처음으로 세상을 의심하게 만든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