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망증이 꽤 심한 편이다. 가끔은 이대로라면 남들보다 치매가 빨리 오는 건 아닐까 괜히 걱정이 된다. 아직 아이도 없는데, 아이를 낳으면 더 심해진다던데 어떡하지 싶은 생각까지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때는 준비물을 자주 까먹었고, 신발주머니를 놓고 와서 현관을 몇 번씩 들락날락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등교하다가 “아, 맞다” 하고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간 기억이 수도 없이 많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출근길이 “아, 맞다”로 가득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남편이 종종 묻는다. “이건 왜 여기에 둔 거야?” “이건 왜 여기 있어?” 그런데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까먹은 거니까.
사무실에 가져가려고 미리 챙겨둔 물건들이 현관 앞에 쌓여 있는 경우도 많다. 나갈 때 보이면 잊지 않겠지 싶어서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두는데, 신기하게도 그걸 보면서도 그냥 지나친다. 며칠째 같은 자리에 있는 물건을 보며 남편이 또 묻는다. “이거 왜 계속 여기 있어?”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왜냐고 묻지 마. 그냥 까먹은 거야.”
가끔은 생각한다. 까먹는 데도 이유가 있을까.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걸까, 여러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그런 걸까.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걸 보면, 그냥 타고난 덜렁이 기질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일적인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신경을 쓰게 된다. 한 번 더 확인하고, 두 번 더 체크하고, 일부러 더 꼼꼼해지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덜렁이인 걸 알기 때문에 만들어진 습관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덜렁이의 종류도 다른 것 같다. 메모하고 계획을 세워서 보완하는 ‘J형 덜렁이’도 있고, 계획을 세워도 결국 까먹는 ‘P형 덜렁이’도 있는 것처럼. 나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편이다.
물론 남편처럼 철두철미해 보이는 사람도 가끔은 물건을 놓고 가거나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만 유독 심할 뿐, 사실은 다들 조금씩은 덜렁이인 거 아닐까.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내가 인공지능 로봇처럼 모든 걸 완벽하게 기억하고,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없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그 덕분에 생기는 웃긴 상황이나 기억들도 분명 있다.
어쩌면 조금 덜 완벽한 삶이 더 기억에 남는 걸지도 모른다. 고생했던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 건망증도 그냥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