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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디터 Nov 20. 2020

관객들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공연

두산인문극장 2020 식사 & 더 줌 아트센터 <pan123mE1>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멈췄고,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렵게 공연을 예매해놓아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티켓이 취소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나마도 한자리 띄어앉기나 입장 인원 수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관객들을 만나야했던 공연시장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났다. 한 순간에 볼 기회를 잃은 관객들에게 무료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두산인문극장 2020 식사편은 그렇게 관람하게 됐다. 


두산인문극장 2020 식사(줄여서 식사)는 배우들이 무대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면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배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전문 배우는 아니고, 본 공연을 같이 준비한 연출가 윤한솔을 비롯한 창작진들이다. 관객들에게 밥, 식사와 관련된 배우들의 경험과 기억들을 키워드로 보여주고 그에 대한 개인의 스토리를 짤막하게 이야기한다. 독특해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을 들을때면 객석에서 오- 하는 탄성도 나오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경험이 나오면 소소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반찬과 밥, 국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랴, 그 음식들이 잘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도 맡으랴, 재밌는 스토리와 함께 그 모든 감각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식탁이 완성된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객들과 겸상하지는 못했지만, 본래 기획에는 만든 음식을 관객들과 나누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음식 맛이 정말 궁금했는데 못내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마음에 드는 공연이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곱씹어보니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았던 이유가 있다. 한 공간에 있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한 자리를 띄어 앉아있는데도 우리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것들에 익숙해진 시대라 생각보다 다른이들을 만나 교류할 기회가 적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 받을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는 셈이다. 한정적인 소통에 익숙해진 사회의 사람들에게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되어주는 공연이라서 지금 같은 언택트시대에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기획의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우선 회차에 나오는 게스트가 매번 바뀌고, 그 게스트의 경험 속에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려 하다보니 음식을 만드는 과정마저 매 회가 다르다. 매일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물론 창작진의 고통은 배가 될테다) 아, 그리고 무대에서 불과 물을 쓰는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가감없이 무대에서 요리하는 모습들이 매력적이었다.


(좌) 공연 포스터      (우) 커튼콜 사진

관객들을 경험이라는 키워드로 연결시켜주는 공연이 하나 더 있었다. 더 줌 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름도 길고 어려운 <pan123mE1>. 퍼포먼스인것 같기도 하고, 연극인것 같기도 한 정체가 아리송한 이 공연은 김신록, 양조아, 성수연, 강말금 이라는 배우 4명의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공연의 줄거리나 진행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배우가 본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공연’, 딱 <나혼자산다>의 무대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40분남짓의 심플한 이 공연의 반응이 호불호가 갈리기는 해도 꽤나 좋았던 이유는 공감대 형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저 네명의 배우의 팬이라면 물론 배우의 일상을 관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공연의 형식이 궁금해서 예매를 했던 나는 팬이 아닌데도 웃을 수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맞이하는 전화벨소리(를 응시하는 눈), 배고파서 뭐든 먹고싶은데 일주일은 어찌나 빠른지 어느새 곰팡이가 피었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들로 가득한 냉장고앞에서 쭈그리며 먹을 수 있는 것을 골라내는 동작, 집에는 나 혼자뿐인데 꽉 잠귀 놓은 유리병을 열지 못해서 고무장갑, 가위 등등 도구의 힘을 빌리다 못해 안 열릴때 나오는 외마디 소리. 배우의 실제 삶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 없지만 저런 장면들이 나올 때 한번이라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관객들은 웃을 수 밖에 없게된다.


코로나시대의, 아니 어쩌면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에도 맞이하게될 언택트시대의 공연에서 나는 ‘공감대 형성’이 키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해도 삶의 온기를 느끼는 많은 순간에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각자의 방에서 공연을 보게 되고, 공연장에서 조차 옆자리는 비워둬야하는 시기지만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간의 소통채널은 존재해야 한다. 관객들의 경험이 퍼즐 한 조각이 되어 완성되는 작품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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