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과 자야의 사랑이야기를 담아낸 뮤지컬
코로나가 공연계에 불러일으킨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공연일 것이다. 이제는 점차 후원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유료로 온라인 공연을 릴리즈 하는 추세지만, 아직 무료로 온라인 공연을 오픈하는 곳도 많다. 11월 23일, 아르코 예술 기록원에서 공연 실황 생중계 사업으로 이 공연을 네이버 티비를 통해 녹화중계를 해주었다. 그 덕에 취향일지 몰라서 볼까말까 고민했었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그리고 이 공연을 꼭 공연장에서 한번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2015년 초연을 시작해 2020년 어느새 삼연을 맞은 이 공연은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사랑 이야기를, 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백석이 어떤 여인을 사랑해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썼다던데? 중, 고등학교 때 교과서로 배우는 시 작품들 중에 백석의 시가 있었고,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저 시에 대해 나는 딱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공연을 보고 마음이 너무 먹먹해져서 러브스토리를 찾아보게 됐다. 대부분의 내용은 공연 속에 나와있는 것과 동일했다. 사람들이 모르게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실화를 아름답게 잘 살려냈다.
시인 백석은 함흥에서 영어교사로 있던 때에 기생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부터 당신은 내 마누라라고,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다는 로맨틱한 말을 던졌다고. 백석은 사랑하는 이 여인에게 ‘자야’라는 호를 붙여주었고, 두 사람은 같이 살림을 차릴 정도로 서로를 사랑했지만 백석의 부모님의 반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백석을 몇 차례 강제로 혼인을 시켰으나 오로지 자야만 사랑했던 백석은 계속해서 도망쳐 나왔고, 같이 만주로 도피하자고 자야를 설득시키지만 자야는 그를 떠나보내기로 하고 거절한다. 백석은 홀로 만주로 떠났지만 전쟁 때문에 다시 경성으로 올 수 없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생이별을 하고, 자야를 그리워한다.
자야는 경성에 남아 후에 시가가 천억을 달하게 되는 대원각을 운영하였고, 그를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이후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가 되었다. 백석을 떠나보냈지만, 어쩌면 전쟁 때문에 영원히 재회하게 되지 못할 줄은 미처 모르지 않았을까. 평생을 백석을 그리워한 것으로 알려진 자야는 기금을 기부하여 백석문학상을 만들었다. 대원각을 시주할 때, 평생을 모은 돈을 모두 기부하는 것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천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백석이 자야를 사랑하여, 시에 영원히 그 그리움을 남겼으니 여한이 없다는 뜻이겠지.
실화가 워낙 탄탄한 것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백석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서정적인 넘버들도 매력적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바다’ ‘여승’ 등 백석의 대표 시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잘 살려서 가사로 만들었고, 그에 딱 어울리는 먹먹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붙여놓았다. 오슷이 나오면 꼭 사고 싶은데 아직인가요?.? 나타샤만큼이나 좋았던 백석의 시 ‘바다‘를 적어본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것만 같구려
바닷가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공연을 보고 백석의 시집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시는 나타샤를 비롯한 세가지 정도밖에 없는데 더 많은 보석같은 시들이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김자야의 산문집, ‘내 사랑 백석‘도 읽어보고 싶어 졌다.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사랑이길래 평생을 그리워했을까. 그게 궁금해져서 올해 눈이 오는 날에는 백석의 시를 읽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