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하땅세의 연극.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
<만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
‘예매하기를 정말 잘했다’ 수없이 속으로 외친 공연이 었다. 최근 봤던 공연들과 확실히 결이 달랐던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공연장' 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공연이 그토록 좋았는데 원작도, 연기도, 연출도 아닌 공연장이 매력이라니?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그만큼 공연장과 이 작품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라 생각한다.
이렇게 굽이굽이 공연장을 찾아가본적이 있었던가.
지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공연장. 예매처에서 보내준 '라이트하우스' 약도에 의존하며 걸어가는 길에 생각했다. 학부시절 혜화동 골목의 소극장을 처음 찾아갔을 때에도, 친구가 스탭으로 참여하게 된 자그마한 공연을 응원차 방문했던 때에도 이보다 더 돌아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더 '가정집'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가정집으로 보이는 공연장 느낌이 아니라 그냥 정말 집 같았다는 말이다. (그럴수밖에, 문 밖에는 난로위의 고구마와 나무의자가 있었는걸.)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정말 집이 맞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객석에 앉으니 정면으로 주방과 욕실이 보인다. 도대체 왜, 객석 측면도 아니고 맞은편에 저 두 공간이 덩그러니 보이는걸까. 이유는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공연의 대부분은 그 양쪽 문 안의 공간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그 문과 이어진 벽들이 일종의 가림막도 되고 세트장도 되고, 백스테이지도 되는거다. 근데 세상에, 연출 방식이 이 공간과 착붙하며 너무나도 매끄러웠다.
주방으로 추정되었던 문 뒤의 공간은 두부장사 아버지 밑에서 핍박받으며 자란 주인공 양백순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가게되는 따뜻한 국수가게가 되기도 하고, 또 양백순이 만두가게 오향향과 결혼하여 데릴사위로 들어가 살림을 차리게된 집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남몰래 동경해오던 나장례씨가 함상을 진행하는 장례식장이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양백순과 관련된 수십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80분의 시간동안 그 공간은 수십개의 장소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흔한 페인트 칠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이 두개의 문은 관객들로 하여금 정말 다 다른 장소를 보고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착각을 야기시키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연장의 벽으로, 아니 더 정확히는 벽지이자 세트로 구성되어 있던 '합판'이 또 그렇게 매력적으로 변한다. 무려 12명 배우들의 열연과 효과음 덕에 합판은 도축업자 배씨의 손에 무참히 죽어가는 돼지가 되기도 하고, 식탁이 되기도 하며, 염색공장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카멜레온 같이 변하는 공연장과 함께 주인공 양백순은 양모세, 오모세, 그리고 나장례로 이름을 바꾸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왜 그는 이름을 계속해서 바꾸게 되었을까. 만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는 도대체 뭘까. 그래서 그는 정체성을 찾았을까. 이 모든 질문의 답은 카멜레온 같은 공연을 직접 보며 함께 찾아가기를. 2022년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재밌기로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공연이라 자신한다.
공연기간: ~2022.03.26
공연장소: 라이트하우스
극단: 하땅세
시놉시스: 하남 연진의 양 씨 마을.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무시 받으며 살던 두붓집 아들 '양백순'이 살의가 생길 만큼 상처가 깊어지자 결국 마을을 떠난다. 그러던 중 '첨' 신부를 만나 '양모세'로 개명하고, 만둣집 '오향향'네 데릴사위가 되어, '오모세'로 살아간다.
부가정보: 공연이 끝나고 군고구마를 주시는데 그렇게 마음이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