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저 작가, OO때문에 유명하더라'
근데 막상 보러가면 ‘왜 유명한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이런 생각은 현대미술을 접할때 종종 생기는 것 같은데요. 오늘 소개할 전시도 현대미술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작가의 국내 회고전입니다. 개념미술은 현대미술의 한 경향으로 기존의 미적 관념보다는 작품의 아이디어와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특정 개념에 집중하고, 그걸 투영한 작품들로 관객들을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텐데요. 대표적인 예로 마르셀뒤샹의 '샘'을 개념미술의 시초라고 말합니다.
개념미술의 1세대 작가로 불리우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이번 국내전이 꽤 인기를 끌고있는데요. 반면 그의 작품들이 왜 유명하고, 어떤 부분에 특색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후기도 들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이 특별한 점. 딱 세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https://www.michaelcraigmartin.co.uk/artworks/11-an-oak-tree/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알고 보니 작가의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하죠. 이 작품은 참나무입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유리 물잔인데 참나무라니 무슨 말일까요?
작품 옆에는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그는 물잔의 물리적 본질을 참나무로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단어만 참나무로 바꾼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제 물잔이 아닙니다.' 라고 답합니다. 언제 이 물잔이 참나무가 되었냐는 질문에는 '제가 이 잔에 물을 따를 때였습니다.' 라고 답하죠.
저는 이 인터뷰 내용을 작품만큼이나 오래 들여다 봤는데요. 아직도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관객의 발걸음을 여러번 붙잡는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어서,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어떤 이유에서건 이 물잔이 참나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들이 재밌었거든요.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정관념을 내려놓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만큼이나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개념미술의 매력이 아닐까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들은 '뭘 그린거야?' 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와인 오프너, 칼, 노트북, 우산, 클립처럼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품들을 메인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특출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고. 이게 무슨 작품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오히려 이 작가의 매력은 이런 일상적인 소품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과 자세에 있습니다. 같은 소품을 색만 바꿔서 옆에 배치하거나, 전구, 우산, 의자 등 소품의 일부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거나,
또 이렇게특정한 단어와 사물을 함께 배치하면서 운율로 연결되는 유희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특정 소품들은 굉장히 자주 등장하지만, 다른 관점이나 차원으로 표현함으로써 지루함을 조금 덜어내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아주 먼 미래에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건들의 모양과 기능이 정형화되어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기도 하니까요. 저런 소품을 보면서 신기해하거나 함께 추억에 잠길 날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마지막 매력포인트는 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언어와 사물을 같이 배치한 작품, 그리고 서로 다른 사물들을 겹쳐서 배치한 작품들에서 차원이 섞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2차원인데 3차원 같은 느낌을 받는거죠. 이런 매력은 사실 그의 조각 작품들에서 극대화되는데요, 이번 국내전시에서는 조각작품을 영상으로밖에 만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전시가 중반부를 지날때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을텐데요. 그림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상 속 소품들(클립, 포크, 신발 등)을 조각으로 만든 작품들은 테두리만 있을 뿐 안은 투명해서 어떤 곳에 가져다놓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는걸 보실 수 있을겁니다. 심지어 작품의 두께가 얇아서 옆에서 보면 긴 일직선으로만 보이기도 해요. 평면적인 작품들이 3차원의 생명을 부여받은 조각들을 보며 그의 작품세계를 더 이해할 수 있었으니 영상을 꼭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별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직관적인 작품' 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배경지식이 필요하지도 않고, 캔버스 안에 담긴 오브제가 무얼 상징하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본능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작품들이죠. 머리와 마음이 시끄럽거나 새로운 포인트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세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 이 글은 뉴스레터 맅업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