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리뷰
26년도 첫 책으로 너무도 유명한 천선란 작가의 책을 읽었다. 밀리에서 출간된 단편 소설 <뼈의 기록>을 읽고 마음이 너무 아려서, 그의 대표작인 이 책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예상보다도 훨씬 좋았다. SF문학이라는데 나한테는 인문학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고, 곱씹게 되는 문장들도 많았다.
* 내용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콜리는 로봇이다. 그것도 기수 로봇. 기수 로봇은 본디 말 위에서 잘 달리기만 하면 되는 존재이나 우리의 주인공이 그렇게 평범할 리가 없다. 그래서 물론 콜리는 그냥 로봇은 아니고 인간의 실수로 칩 하나가 다르게 들어가서 하늘이 파랗다거나, 자기와 함께 달리는 말 투데이가 지금 행복하다거나, 혹은 지금 불행하다거나. 그런 것을 느끼고 마치 인간처럼 궁금해하는 존재다. 소설 속 세계에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자면 좀 이상하고 독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특별한 그런 로봇.
그리고 콜리는 경마 경기 도중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하다 낙마했다. (이렇게 낭만적인 로봇은 처음이야.)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아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콜리의 파트너 말, 투데이를 살려야 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낙마했다. 그대로 두었다면 투데이는 결국 몸이 망가져 더 이상 달리지 못할 것이기에. 하지만 아무도 콜리의 생각과 결정을 알지 못한다. 완주를 하도록 설계된 이 기수 로봇이 하늘이 푸르러 말에서 떨어졌다고 말했고, 그걸 독특하게 생각한 연재는 전 재산을 털어 콜리를 데려와 고쳐낸다. 제2의 삶을 살게 된 콜리는 함께 살아가게 된 가족 구성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그리움은 어떤건지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당신도 저를 그냥 데리고 온건가요? 이유 없이요?"
콜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변인들은 생각하고, 각자의 답을 이야기한다.
"그리움은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대화를 통해 인간의 지혜를 학습한 콜리는 투데이를 위해 결론을 내린다. 경주마 투데이는 더 달릴 수 없으면 죽을 것이기에. 투데이를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게 하면 된다. 거창한 기계 같은 건 필요 없다. 행복은 과거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으니까.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들면 된다는 결론을.
소설 속 콜리는 로봇이다. 그는 좀 특별한 로봇이어서 양갈래 길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선택을 했고, 로봇이기에 몸이 부서지는 순간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콜리의 고통과 관련된 어떤 것도 책에 묘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콜리의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마다 계속 눈물이 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책의 처음을 살았을 때보다 마지막으로 향해갈수록 자기의 행복을 찾아간다. 콜리도 행복에 대해 분명 이야기했었다. 자기도 행복을 느낀다고. 주변 사람이 행복하면 그게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건 나쁜 결말은 아니겠다. 좋은 결말이 분명한데도 눈물이 난다. 심지어 선택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도.
곱씹다 결론을 내렸다. 콜리에게 정이 들었구나. 소설 속 휴머노이드에게 정이 들었다. 그래서 콜리가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을 더 오랫동안 봤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에 마지막장을 쉽게 덮을 수가 없었다.
<천 개의 파랑>은 행복을 찾아 나가는 소설이다. 연재, 보경, 은혜, 투데이, 콜리 등등 모든 등장인물이 행복을 찾아 나간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섣불리 할 수 없었던 각자의 상처를 내보이는 일을 콜리에게 하고, 콜리는 그걸 이해하려 질문을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시금 돌아와 잔잔하게 독자들을 위로한다.
책을 덮고 나니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이 가사 때문일까. 콜리가 해줄 것 같은 말이기도 하고. 콜리를 매개로 더욱 서로를 보듬게 된 인물들의 토닥임 같기도 해서다. 작가는 콜리의 마지막 생각을 담담히 기록한 문장으로, 오늘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삶은 다양한 사건과 감정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리가 삶을 말하며 명명하는 단어들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다는 것을. 그러니 모두 다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