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와 대학시절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친구와 보내다 보면 관계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가 있다. 하루의 전부인 그 친구가 새로운 아이에게 관심을 더 쏟거나, 연인이 생겼다면 질투 아닌 질투를 해본 적도 받아본 적도 있을 것이다. 친구는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나의 하루를 차지하기 때문에 아무쪼록 어제와 같은 이 관계가 변하지 않길 바라본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듯이 내가 쏟은 감정과 시간이 그 친구에게 ‘어떠한 계기’로 무의미해질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을 종종 하게 되면 우리의 사이가 한순간에 깨져버릴지 몰라(혹은 일방적으로 버림받을까 봐) 내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친구의 기분만 살핀 경험이 있다. 대게 ‘어떠한 계기’는 이유도 모르고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다만 어제와 다른 친구의 무뚝뚝한 표정과 어색한 공기로 ‘어떠한 계기’가 왔다고 짐작만 한다.
여러 해를 보내고 자신의 감정 변화에 주변인도 휩쓸리게 만드는 사람들을 거치고 나니 자연스레 불편하게 느끼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의 추억, 그리움, 정으로만 붙잡고 있던 불편한 관계를 서서히 놓는 법을 자신을 사랑하면서 알아갔다. 왜 그땐 그러지 못했을까? 그 친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 관계에 더 절박했던 내가 먼저 쉽게 끊을 수 있었던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그 친구를 대체할 ‘대체재’가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그 ‘대체재’는 연인이 될 수 있고, 진정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겼을 수도 있고, 커리어에 몰두하거나 느슨하지만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관계가 여럿 있거나. 그렇게 나의 하루는 그 친구를 대신할 대체재들로 둘러싸여 있다. 대체재들은 나를 성장시키거나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체력과 시간을 계획적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투입되는 에너지에 비해 감정 소모가 많은 관계는 연연해하지 않고 끊어버리거나 느슨한 상태로 두었다.
서른. 흐릿했던 삶의 우선순위가 차츰 선명해지기 시작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이 과정을 반복하는 시점에 친구라는 사전적 의미가 다시 보이게 된다. [친구 : 오래두고 가깝게 사귄 벗] 친구가 꼭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풀어두고 생각하면 대상의 범위가 확장되는데 그 시야에서 나의 친구는 이렇다.
사람 친구. 사소한 이야기부터 선택의 기로에 서로를 배려하며 경험과 조언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때로는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같이 가는 그런 친구, 인연도 없는 사람(직장 상사, 전 남자친구 등)에게 욕도 해주고 울어주는 친구가 있다.
반려동물 친구. 무조건적인 사랑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반려동물의 일방적인 주인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정서적 안정이 필요할 땐 그들의 머리를 쓰담고 눈을 맞춘다. 바라만 보다 참을 수 없는 애정이 넘쳐 나에게 뛰어 들오는 이 친구들은 내가 평생 지켜줘야 할 친구다.
종이(책) 친구. 이 친구는 나의 관심사에 따라 방향 키를 제시해 준다. 매우 현명하지만 쉽게 내주진 않는다. 시간을 들여 습득하고 경험을 통해 돌아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그럼 내재화된 내용들은 나의 인생에 크고 작은 변화에 기여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멋진 친구를 얻기 위해 받치는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친구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달라져있다. 종이 친구를 두니 관심 있는 주제별로 느슨한 연대를 가진 모임에 구성원이 되어 사람책 서재를 채우고 있고, 반려동물 친구들을 SNS에 공유하니 동물로 연결이 되어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은 대게 하트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면서 나의 안부도 함께 묻는 느슨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 친구에겐 곁에 없어도 소중함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배려와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주변은 ‘민재스러운’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다. 주변을 견고히 만드는 건 주변인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나’를 먼저 알고 친해져야 하는 것, 관계의 실패를 경험하고도 또다시 관계를 쌓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