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2.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3.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생도들은 이 3줄의 문장을 매일 아침 외친다. 아침마다 같은 문장을 낭독한다는 것은 생가보다 강력하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했던 단어와 문장들이 어느새 내 마음속에 세뇌된다.
사관생도들은 결국 군인이 될 사람들이기에,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그 말을 첫 구절에 담았다. 하지만 국민들이 군인에게 미래의 장교들에게 바라는 모습은 이런 모습일 수 있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에게 생명을 바친다는 워딩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남들보다 덜 놀고, 열심히 공부해서 사관학교에 입학했는데 갑자기 생명을 바치라니? 내가 이러려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나?'라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우리 아들, 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부모님,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을 멋지게 생각하는 친구들을 두고 함부로 생명을 바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두 번째 문장의 '명예'와 '신의'는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욱 추상적인 표현이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전혀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있어 보인다. 명예롭고 싶고, 믿음이 가득 찬 사람이 된다는 것은 꽤나 좋아 보이니까. 하지만 이 단어는 조금은 다르게 그들에게 적용된다. 결국 규정과 방침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도시절에는 생도시절의 규율에 맞춰서, 졸업을 해서는 법과 규정을 따라서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는 군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하지만 명예와 신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그리고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해 다르게 적용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
나름 가장 멋진 문장은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 잘 만든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또한 해석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안일하고 험난한 것은 정신적인 것인가 육체적인 것인가? 정의는 무엇이고 과연 불의는 무엇인가? 이 애매한 4지선다 속에서 가장 좋은 길은 안일한 정의의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없어 보이지만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어디든.
생도생활 중, 1년 365일 중, 300일은 이 말을 외치며 산다. 4년이면 1200번은 이 말을 외치며 신념화하며 산다. 이 말을 외치면서 각자의 마음에 어떤 신조가 남는지는 그의 경험과 국가관과 야망의 척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