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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교 가는 길 : 메리 크리스마스

by 밍작가

공주가 태어나서 맞이하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마음속에 이혼을 결심하고,

공주를 데리고 스타필드에 나가서 빨간 조던 11 신발을 사줬었다.

나도 빨간색 조던 11로 깔맞춤을 하고 싶었지만.

36의 나이에 빨간 신발은 조금 부담스럽다.


그러고 나서 그 주 평일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작년 12월 마지막주 목요일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처럼 무언가 기준점이 되는 시기가 있으니,

1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쉽게 파악이 되는 것 같다.


이혼을 노래하듯이 이야기하던 그 여자.

막상 날아온 소장에 당황하던 그 여자와 그 어머니.

하지만 자존심에 숙이고 들어오지는 못하던 사람.

그리고 돈 욕심과 갈등.

그리고 도장.


크리스마스가 되니,

1년 동안의 이러한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미지의 세계였지만,

미지의 세계에서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


쾌락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단 건전하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눈치 안 보고 내 맘대로 살아보고 있다.


나름 살만하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날.

아직 애매하게 남아있던 세금 문제를 물어보기 위해

전 사람에게 카톡을 했다.


내가 착각했던 부분과 그 사람이 설명해주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했다. 거기서만 끝났으면 되는데,

오지 않아도 될 메시지가 하나 온다.


"내가 이렇게 다 신경을 썼었으니, 넌 모르지."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잔소리 비슷한 무언가에 갑자기

본능적으로 '흥분'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졌기에.

대화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을 알기에

대충 대꾸하고 대화를 종료하려고 한다.


하지만,

뒤 이어 오는 두어 개의 카톡.

뭔 할 말이 그리 많고, 가슴속에 쌓인 게 있는지,

연거푸 본인은 열심히 했고, 나는 나빴다는 말을 해댄다.


처음으로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그 과거에서 나오지 못한 건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그렇게 우리가 부부일 때 본인의 '열심히'를 증명한다고 해서

지금 달라질 것은 하나 없는데.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날, 굳이 그런 메시지를 보면서

기분이 상하고 싶지 않다.

읽지 않고 스와이프 하여 삭제를 한다.


굳이 보관할만한 대화가 있는 사이는 아니니까.

그렇게 읽지 않아도 되는 사이니까.


부디 과거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공주의 엄마로서 밝은 미래를 보면서

공주랑 함께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공주를 보러 갔다.

잠에서 막 깬 공주는 귀여운 표정으로 아빠를 맞이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들고 간 민트색이 반짝거리는

프렌치캣 패딩과 세발자전거를 꺼내본다.


"공주가 좋아하는 냥이 패딩이야~"


패딩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을 보고서는

공주의 표정이 좋아진다.


이거 입고 아빠랑 스타필드 가자!

하지만,

아직 두 돌이 안된 공주는 취향이 명확하다..ㅋ


오늘은 이 옷을 입고 싶지 않으시다고 한다.

대신 다른 옷을 입겠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핀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본인이 좋아하는 빨간색 핀을 꼽으시겠다고 한다.


2주 만에 보는 공주는 그동안에

장염이 와서 좀 아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더더욱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그래서 집 밖으로 공주를 데리고 나오는 게 일이다.

'엄마 안아'를 외치다가는..

데리고 나오면서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얼른 데리고 나와서

공주가 좋아하는 냥이 유튜브로

관심을 돌리는 기술을 쓰는 수밖에.


크리스마스이브의 스타필드행은

아마 판단 미스였는지도 모르겠다.

평소면 30분이면 갈만한 거리가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R0000434.JPG

그동안 공주는 이런저런 짜증을 내면서

힘들어했다. 냥이 유튜브, 아기상어 유튜브

다 소용이 없다.


스타필드에 가서도 찡찡이 장난이 아니다.

안으라고 했다가.

내리라고 했다가.

집에 가자 했다가...^^


누구를 닮았는지 공주는 참 잘 먹는다.

어른 밥공기 한 그릇을 먹어치우는

두 돌 아기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우리 공주가 그러하다.


전복미역국을 아주 완벽하게 먹어치우는 공주.

그동안 죽만 먹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너무나도 잘 먹는다.


더 맛있는 거 사주려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


스타필드 여기저기에 애기들 선물을 들고 다니는

부모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 공주는 아빠랑 할미, 할비와 함께 하지만.

이러한 조합도 공주에게 따듯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또 얼마나 커 있을까.

그리고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얼마나 더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까.


이혼하고 맞이하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이렇게 특별한 날도

평범하게 보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내 생일에 이어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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