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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교 가는 길 : 키카에서 우는 아빠

'24. 1. 6. (토)

by 밍작가

크리스마스에 공주를 보고,

2주 만에 공주를 보러 갔다.

서류상으로는 공주를 2, 4주 차에

보러 가도록 되어 있지만,

지난 12월처럼 5번의 주말이 있으면 애매해진다.

그리고 그런 걸 따지기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지난 주말이

너무나도 무덤덤했기에 전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아침 일찍 서울로 갔다.


새해에 일부러 본가에 가지 않았다.

온전히 나 혼자서 맞이했다.

꽤나 외로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외롭지 않으려고 일부러 바쁘게 살려고

아등바등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신없이 한 주가 흘렀다.


새해가 되면서 나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에,

공주에게 줄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았다.

이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손에 쇼핑백이 들려있는 것과 아닌 것의 입장의

순간은 천지차이니까.


하지만, 우리 공주가 조금 달라졌다.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가,

두 팔을 벌리니 폭삭 안긴다.


"우리 공주 잘 있었어?"

"에~"


얼굴을 부비적해도, 안고 있어도

거부감 없이 내 곁에 있는다.

내 손에 고양이 인형 같은 아이템이 없더라도 말이다.


"공주! 아빠랑 어디 가기로 했어?"

"키카!"

"얼른 옷 입고 가자!"

"웅"


그러고 나서 옷을 갈아입히니, 잘 입는다.

이전 같으면 아빠랑만 나가는걸

조금 두려워하고 찡찡거렸었는데,

그런 찡찡거림도 없다.

아주 쿨하게 같이 문 밖으로 나선다.

어제가 700일이었던 공주.

확실히 볼 때마다 커가는 게 보인다.


오늘도 역시나 키카 오픈런이다.

들어가니 공주 말고 2명 정도 아기들이 있다.

쾌적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공주는 놀기 시작한다.

평소와 조금 다른 건,

캐치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스타필드 팝업스토어에서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지만.

조만간 캐치핑 종류별 이름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장난감도 좋지만,

키즈카페에선 신나게 뛰노는 게 좋으니까.

방방(트램펄린)에 데리고 간다.

처음에는 가기 싫다던 공주가 들어가더니

뛰기 시작한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아주 신나고 경쾌하게 뛴다.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뽀로로와 동물들의 이름을 외치며 신나게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눈가에 습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몇 초 지나,

그 무언가는 줄기가 되어서 내 볼로 흐르고 있다.


사실 몇 달 전까지는 공주를 데려다줄 때마다,

"안녕~"인사를 하면,

습한 무언가가 눈가에 느껴지기 시작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에는 흐르곤 했었다.


이런 삶도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최근에는 괜찮았는데.

오랜만에, 그것도 키즈카페에서 터져버렸다.

그것도 공주가 즐겁게 뛰고 있는 방방 주변에 앉아서.


다들 웃고 있는 부모들 옆에서

나란 애비는 울고 있다.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 지금이었을까.


이제 아빠라는 사람을 믿고 순순히 따라나서는 공주.

이제 공주의 세상 속에

아빠라는 존재가 확실히 새겨졌다.

그런데 정작 아빠라는 사람은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가 없다.


말도 못 하고, 엄마랑 떨어지면 징징거릴 때보다도,

아빠라고 부르면서,

믿고 따라나서는 공주를 보니 더 슬퍼지는 이유이다.


공주가 너무나도 밝게 잘 자라고 있다.

그 작은 입으로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하는 게 너무나도 귀엽다.

그걸 2주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것도 너무 슬프다.


그래서 공주가 점프를 뛸 때마다,

내 눈물샘을 쿡쿡 눌러댄다.


노는 게 힘들었는지,

공주는 어느새 내 품으로 들어와 있다.

내 품에서 같이 대형스크린에 나오는

노래 영상을 보고 있다.


이렇게 오래 내 품에 있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이제 아빠라고 생각하기에,

안심하고 있기에 편하게 품 안에 있는 것 같다.


이게 또 눈물샘을 지그시 누른다.


심호흡을 한다.

옆에 다른 부모들이 행복하게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러면 그림이 너무 이상하니까.


그 순간 스크린에서는 '푸른 세상 만들기'라는 동요가 나온다.


푸른 하늘을 만들어줘요

새하얀 뭉게구름 두둥실

예쁜 새 모여 노래 부르는

저 파란 숲속 나라도 만들어줘요

아빠가 만들어 주시나요

엄마가 만들어 주실까

아니야 우리가 해야하죠

아름다운 푸른 세상 만들기

우리가 푸른 씨앗 되어

세상 만들어요


노래에서는

아빠도, 엄마도 만들어주지 못하는

푸른세상을 아이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도의적인 죄책감에 또 눈물이 난다.

내가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데,

공주에게 알아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라는 부담감을

준 것 같아서 너무나도 미안하다.


평소 같으면 한 시간만 놀아도

"엄만테 가자!"를 외치던 공주.


오늘은 그런 이야기도 안 한다.

이야기 안 하면 하루 종일 아빠와 놀 기세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키즈카페가 풀방이 되었다.

너무 혼잡해서인지 공주도 힘들어한다.

밥 먹을 시간도 돼 가고..


2시간 넘게 놀고 공주를 데려다주고,

평소 같으면 아빠 간다고 해도 쿨하게 인사하는데.


"아빠 갈게~"라는 말에,

찡찡대기 시작한다.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


이젠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공주가 아빠의 존재를 알아가니,

또 다른 차원의 슬픔이 오기 시작한다.


못난 애비는 이 글을 쓰면서

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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