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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교 가는 길 : 양파링

by 밍작가

이혼을 하고 나서는 어느정도 '애정결핍'에 빠져서 사는 것 같다.


아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어느 시기 이후에는 애정결핍이 왔었다. 일방통행과 같았던 '애정'의 방향에 상처를 입고 서서히 애정의 문을 닫고 살았던 것 같다. 애정을 받을 가능성이 점차 적어지기에 주는 행위도 자연스레 줄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남녀 사랑의 한계일까. 아니. 내 그릇이 작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사랑은 쌍방통행이 아니라 일방통행인 것 같다.


공주가 가끔 보는 애비에게 '애정'이라는 이름의 그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내가 '애정'을 주는 행위만으로 나는 마음 속 '애정'이라는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공주에게 간다. 애정을 느끼고 더 살맛나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이 '살맛'은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회사에서 일이 적당히 마무리 되고, 퇴근을 기다리고 있는 금요일 오후, 기차를 예매하지도 않았는데, 전 사람에게 토요일에 공주를 보러 가겠다고 카톡을 보냈다. 일단 지르고 보는 엔프피 에비는 그제서야 기차표를 예매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첫차는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매진이었다.


퇴근하고, 머리를 자르러 가는 차 안에서 SRT어플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눌러댄다.

기적같이 더 좋은 첫차 다음 시간의 기차가 뜬다.

다행이다.


공주에게 간다.

오늘도 문 앞에서 아빠를 기다려 준다.


그리고 날 닮아서 그 큰 입으로,

베시시하며 웃어준다.


이야기는 안하지만,

(얼른 와... 키카가자...)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매번 가는 키즈카페가 별거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보다보니, 어렸을 때 뛰어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뛰면서 뇌가 발달하고, 집중력도 높아질 수 있기에.


'어렸을 때에는 많이 뛰어야 똑똑해져'라고

근거 없이 이야기를 들었던 것에 대한 근거를 조금 알게 되니까.

우리 공주는 더더욱 많이 뛰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도 키카를 가서, 열심히 뛰게 한다.


예전에는 트램폴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새 키즈카페만 들아가면 트램폴린에 제일 먼저 달려간다. 전세낸 것 마냥, 아무도 없는 트램폴린에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논다. 다행히 오늘은 눈물샘이 고장나지는 않았다.


상체보다 하체가 발달한 애비를 닮아서인가. 우리 공주는 지치지도 않는다. 계속 뛴다. 한시간만 뛰어도 힘들고 지칠법 한데도, 계속 뛴다.


"까까 먹고 놀까?"

"아니!"


계속 뛴다. 배도 안고픈가보다.

아니면 먹는 것보다 뛰는게 좋은가보다.


3시간 가까이 놀고 나서야.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억지로 겉옷을 입힌다. 가지 않겠다고 땡깡을 피우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는 밥먹으러 가야 할 시간이기에.


계산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스낵코너에 들어가더니 양파링을 집어든다.


'양파링 안먹어 봤을텐데...'

'전 사람은 이거 100% 뭐라 할텐데...'


크게 나쁘지 않은 선에서, 누구 눈치보며 살지는 않기에 이제.

"그래 그거 가지고 와~"

하고, 들거 나온다.


"이건 양파링이야"

"양파..리. 이야!?"

"응. 집에 가서 먹자."(안 먹일건 안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양파링을 뜯어달라고 한다. 집에가서 먹자고 이야기해도 안 먹힌다. 찡찡이가 올라온다.


"알았어. 알았어." 뜯어줄게~

뜯어주니 야무지게 양손 가득 양파링 5~6개를 잡느다.

IMG_9665.JPG 모자는 엄마모자를 쓰고 나가시겠댄다...

당연히 맛있겠지.. 이렇게 자극적인데...

어른 과자를 벌써 먹인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어렸을 때, 저 시기에 새우깡 먹으면서 컸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집에 들어가서 전 사람은 놀라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공주가 좋았으면 되었다..^^


공주 아빠 내일은 할미랑 할비랑 같이 올게~

"아빠 내일.. 할미.. 할비라.. 같이...와!!"

"응~, 내일 보자~^^"


이렇게 애정을 주고 나니,

애정으로 채워진 주말이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던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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