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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자 Jan 25. 2024

12월 29일. 눈썹문신을 하다.

2023년 마지막 근무일. 모두가 새해를 맞이할 거라고 들떠있던 12월 29일 금요일 저녁.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눈썹문신을 하러 갔다.


나는 거울을 잘 보지 않는 성격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샤워하고 나서 각각 한 번 정도... 어려서부터 눈썹이 진한 편이었기에 눈썹이 잘 붙어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썹에서 바깥쪽 절반이 희미해진 게 아닌가.  


한 번 발견하고 나니, 엄청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눈썹문신을 폭풍검색했다. 남자들도 많이 하고,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음. 할만하겠군!’


이어서 나오는 지식인 질문

‘눈썹문신하면 세수 못하나요?’

‘눈썹문신하면 술 못 마시나요?’

와 같은 것들이 있었다.


눈썹문신을 하면 며칠 동안 세수를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절주도 해야 하고. 불편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 딱 그날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해'가 바뀌는 그 연휴. 혼자 뭘 하며 보낼지 꽤나 고민했기 때문이다. 


‘광주 눈썹문신’을 검색한다. 제일 잘해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프로필 사진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예약을 했다.


아무도 눈썹문신을 하지 않을 12월 29일.


샵을 찾아갔다. 간단한 설명과 밑그림 그리기.

마취크림 도포. 

그리고 샥샥 뭔가 긋는 느낌...


두 시간정도 지났을까.

눈썹이 짱구눈썹처럼 진해졌다. 

조금 어색하다. 


“3일 동안은 세수를 하지 마시고, 일주일 동안은 눈썹 밑으로만 세수하세요.”

라는 안내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눈썹문신을 하고, 3일 연휴 동안 눈 밑으로 세수만 대충 하고 지내면서 버텼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나름 잘 버텼다.  


외로움 때문에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까 봐 만든 눈썹문신이라는 장치가 잘 작동했다. 다행이었다.


외로웠지만 외롭다고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인 눈썹 문신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엄마의 칭찬은 덤.


새해는 새해다. 혼자 맞이하는 새해는 외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혼자 힘들었던 한 해를 잘 보내주고, 새해를 잘 맞이하는 것 밖에.


외로움이 예상되지만,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12월의 마지막 연휴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밖에 나갈 수 없는 환경을 강제로 세팅했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외로움으로 인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그런데 무슨 짓을 해봤자 더 외로워질 것을 알기에.

아예 씻지도 못하게 만들어서 이런 미연의 사고(?)를 방지해야 했다.


나란 사람은 기념일과 이벤트에 취약한 사람이다. 물론 반대성향을 가진 사람과 6년을 살면서 무던하게 지나가곤 했지만...

기념일과 공휴일에도 항상 일찍 잠자리에 먼저 들어가던 그 사람. 거실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외롭게 TV를 보며 크리스마스나 새해, 생일을 맞이하던 나. 이런 것들이 쌓여서 무언가 결단을 만들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파티가 있어야 하고. 12월 31일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해를 돌아보며, 내년에도 잘 살아보자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던 나였다. 사실 새해는 전날 즐겁게 마신 술로 인해 본 기억이 별로 없기도 했다.


특별한 날을 혼자 보내는 걸 꽤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젠 혼자 보내야 한다.

그게 참 두려웠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다. TV에도, 블로그에도, SNS에도 다들 분주하다. 여기저기 회식 사진이 올라오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사진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오롯이 혼자다.


이혼을 하고 그동안 못해서 불만이었던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혼을 하고 나니, 그런 것들이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남은 건 나와 멀리 있는 공주뿐이라, 나와 공주를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이 블로그였다.


블로그를 하니 외롭지 않았다.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것도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리고. 이웃들 글도 보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다 보면 하루가 모자랐다.


이혼하고 남자가 혼자 살면 흥청망청 돈 쓰면서 술만 마실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러기 참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돈은 잘 안 쓰고 글만 쓴다.


블로그가 되었든, 운동이 되었든. 이혼을 하면 깊이 빠질만한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 그 대상이 양육자에게는 당연히 아이겠지만, 비양육자에겐 특히 무언가 꼭 필요하다. 무언가 구심점이 없으면 외로움에 지배당해 본능과 쾌락에 몸을 맡기고 엇나가기 딱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이혼을 생각한다면, 외로움을 잘 견디는지 꼭 생각해 보자. 그리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건전한 취미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괴로움보다 외로움이 나을 것 같아서 선택한 이혼이어도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 이 좋은 날 내 새끼를 보지 못한다는 외로움은 꽤나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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