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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자 Jan 31. 2024

유부남들과 강릉여행기

이혼을 하고서는 친구들과 잘 만나지 않는다. 한 조직 내에 있는 대학동기들은 당연하고,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만남도 무언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내일모레 마흔. 

대화의 주제는 점점 와이프이야기, 자녀이야기를 하는데, 그 속에서 허허 웃으며 장단만 맞추기는 솔직히 힘들다.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망년회도 나가지 않았었다. 바쁘지는 않았지만, 바쁘다고 둘러댔다.


그날 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1월 27일에 시간 되냐고. 강릉으로 놀러 가자고 한다. 한 달도 더 남았는데 바쁘다고 하기도 뭐해서 그냥 알았다고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날이 왔다. 


사실 혼자 다니는 여행에 지쳐있기도 했다. 혼자 지내는 근 1년 동안 남해로, 여수로 혼자 여행을 다녔지만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일단 어디 들어가서 밥을 먹는 게 쉽지 않고, 생각보다 심심하다. 누군가 말하길 고독을 즐겨야 진정한 발전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인가 보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다행히 공주도 퇴원을 했고, 간만에 휴가에 내가 좋아하는 강릉에 가보고도 싶었다. 


강릉은 20대 때부터 참 좋아하던 도시다. 

결혼 전에는 누군가가 바다 보러 가자고 하면 호기롭게 영동고속도로에 오르기도 했고, 

친구들과의 한 여름 강릉 바닷가와 카**마 나이트클럽의 추억도 있다.

결혼하고 속초에서 일을 할 때는 올림픽을 보러 가기도, 가끔 바람을 쐬러 가기도 했었다. 

이혼 후의 강릉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에 숙소에서 모이기로 했다. 

하지만, 정신없이 친구들과 어우러져 술로 시작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조금 일찍 갔다. 


일단 강릉을 가면, 무조건 안목항으로 간다. 

뭐 거기밖에 몰라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안목항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노을이 참 이쁘다.

주변에 으리으리한 카페들이 갈 때마다 간판을 바꿔가며 자랑을 해도,

단출하다면 단출하고, 작다면 작을 수 있지만.

언제나 안목항 센터에 자리 잡아서 나를 반겨주는 것 같다. 


"오랜만이네!"


날을 참 잘 잡은 것 같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솔솔 불어 파도가 이뻤다.

그리고 역시, 강릉은 서울보다 따듯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서 한동안 멍 때린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모래사장에 여러 사람들이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며 겨울바다를 만끽한다. 


내가 찍어주었던 사람, 

나를 찍어주던 사람, 

그리고 나와 함께 찍었던 사람들도 생각이 난다. 


더 생각이 깊어질 무렵. 친구들한테 전화가 온다. 

언제 오냐고. 빨리 오라고. 


굳이 혼자 안목항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청승맞아 보이니까. 

거의 다 왔다고 하고 숙소로 간다.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 술로 시작한다. 

그러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다.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이라는 친구. 

딩크족으로 사는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친구. 

와이프한테 허락받기 위해서 지난주에 독박육아를 하고 왔다는 친구. 


다들 그렇게 그들의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나도 내 세상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친구들의 세상 속 이야기가 더 이상 재미가 없다. 


혼자도, 유부남들과도 여행이 참 쉽지가 않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 

이혼을 하고, 안 하고,

아이를 낳고, 안 낳고.


가구형태의 변화에 따라서 다른 형태의 감정, 걱정, 자유를 가지고 산다. 

친구들은 오랜만에 와이프 없이 온 여행이 너무나도 행복하지만, 나는 그냥 혼자 밥 먹지 않는 게 다행이다.

친구들은 와이프 목소리 톤으로 그녀들의 기분을 걱정하지만, 나는 그런 걱정은 없다. 

친구들은 어디든 다닐 자유가 없고, 나는 있다. 


조던 피터슨은 '질서 너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은 타인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의 질서를 유지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영향이 마음속의 '질서'가 되어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자신만의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인생이 된다. 


내 마음의 질서를 잘 유지하게 도와주는 타인을 만날 필요가 있다.

내 과거를 부정하지도, 내 현재를 비하하지도, 내 미래를 얕잡아보지 않는 그런..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면,

조금은 꽉 막혀있던 과거였지만, 새로운 '질서'를 통해서 뻥 뚫린 미래로 이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성공한 인생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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