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은 공주의 두 번째 생일이었다.
지난주에 공주를 병원에 가서 보고 왔지만, 또 공주를 보러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였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나에게는 꽤나 중요하기에. 반면에 전 사람에게는 그닥 중요하지 않기에... 나라도 잘 챙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주를 보러 갔다.
중이염 때문에 입원을 했던 공주는 퇴원을 해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가자마자 이 책, 저 책을 꺼내서 들고 와서는 읽어달라고 한다. 1주일 새에 말이 더 늘은 것 같다. 발음도 조금 더 정확해진 것 같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말을 꺼내는 모습이 보인다. 말을 통해서 이 세상을 그려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부터 키즈카페를 가자고 양말을 신겠다고 하던 공주. 키즈카페에서 타는 방방이 제일 재미있다는 공주를 위해 키즈카페를 나선다. 오늘은 그래도 조금 특별한 날이니까. 집 앞에 있는 키즈카페가 아니라 지난번에 갔던, 다산 현대아웃렛에 있는 키즈카페로 향한다. 밥도 맥일 수 있고, 선물이라도 하나 더 사줄 수 있으니.
다산 아울렛 키즈카페는 전용 양말이 있다. 워낙 트램펄린이 미끄러워서 보호자도, 아이들도 미끄럼방지 전용양말을 신어야 한다. 지난번에 샀던 양말이 있어서, 나도 집에서 나올 때부터 그 양말을 챙겨가지고 왔다. 양말 색이 이상하다며 그렇게 안 신겠다던 공주도, 이 양말을 신어야 좋아하는 방방을 탈 수 있다는 것을 아는지, 순순히 양말을 신는다.
지난번에는 오후에 와서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오늘은 아침 일찍 와서 여유가 있다. 그래서 한 칸에 한 명씩만 올라갈 수 있는 방방에도 아이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공주는 어렵지 않게 적당히 구석에 있는 방방에 올라타고 또 점프를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 뛰고 싶었던 방방인데, 중이염 때문에 놀러 가지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주 신나게 방방을 뛰기 시작한다. 방방을 뛰다가 가끔은 아빠에게 살인미소도 날려주기도 하고.
"공주 재밌어?"라는 나의 물음에
"응!!"이라고 환하게 웃어주며 열심히 뛰기도 한다.
비록 새벽부터 오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모든 힘든 것은 잊게 해주는 미소이다.
(아침에 맞춘 알람이 '주중'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엑셀을 조금 덜 밟았으면 못 올 뻔했다..)
방방도 뛰고, 키즈카페에 있는 미끄럼틀과 기구 몇 개를 타고나니, 공주가 배가 고픈 것 같다.
"맘마 먹으러 갈까?"라는 말에 순순히 "응! 맘마 먹으러 가자~"라고 대답한다.
"공주 뭐 먹고 싶어!?"
"미역꾹!"
미역국이 먹고 싶다니,
지 생일이라는 걸 아는지,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걸 아는지..(알 리가 없겠지만)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한다.
미역국을 먹으러 간다.
공주는 미역국, 나는 뚝불.
작은 접시에 미역국을 떠서 식히고, 조금 있다가 공깃밥을 조금 말아서 공주에게 떠준다.
그런데, 공주는.
"안 먹어! 싫어!"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음. 어떻게 해야 할까.
고기를 좋아하는 공주인데, 고기가 없어서 그럴까.
내 뚝불에 있는 불고기들을 꺼내서 작게 잘라서 미역국 밥숟갈 위에 올려서 준다.
그제야 잘 먹기 시작하는 공주.
아. 그렇지. 미역국만 먹으면 맛이 없지. 지난번에 미역국을 잘 먹던 모습만 생각하고 시켰는데, 뚝불을 시키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했다. 그래도 잘 먹어주어서 다행이다.
원래는 스파게티를 먹으러 갈려고 했는데, 공주가 미역국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들어왔더니, 공주에게 또 미안해진다. 두 돌이면 친지식구들이 모여서 공주의 두 돌을 이뻐해 주고, 인생에서 가장 귀여울 이 시기의 애교를 보면서 잔뜩 이쁨을 받을 수 있는 날인데.
이렇게 애비랑 단 둘이 아울렛 식당에서 미역국을 먹고 있는 공주를 생각하니, 참 미안했다.
이렇게만 지나갈 날이 아닌데. 더 재밌고 즐거운 날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이 미안함과 짠함이 눈가에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공주에게 미역국을 맥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벽을 보고 공주와 나란히 앉아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못 봤을 것 같다.
울면서 애기 밥맥이는 아빠의 모습은 뭔가 사연 있어 보이고, 이상하니까.
나도 뚝불 국물에 밥을 말아서 대강 먹다 보니, 공주가 밥을 다 먹었다고 한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잘 안 먹는다. 중이염이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식당에서 나와서 아울렛을 돌아본다.
장난감가게에도 가고, 옷가게에도 가고. 마음에 드는 선물을 사주려고 이리저리 돌아본다.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내가 이쁠 것 같은 옷을 사다 줘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기에. 직접 고르는 게 가장 좋다.
공주가 좋아하는 프렌치캣 매장에 간다. 공주의 감탄사가 이어진다.
"냥이다!. 여기도 냥이. 저기도 냥이. 냥이 냥이!!" 라며 눈이 휘동그레 진다.
"공주 이쁜 게 뭐야?"
"음 이게 아주 이쁘네?"라고 이야기하며,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보라색 티셔츠를 하나 골라 든다.
"그래? 이게 이뻐? 그래 이거 사줄게!"
두 돌도 안된 아기가 옷을 골라 입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뉘 집 딸인지 참 유별나다.
신발가게에도 장난감 가게에도 들어간다. 그런데 공주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내에 있는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공주가 이야기한다.
"엄만테 가자!"
슬슬 졸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말은 엄마 품에서 자고 싶다는 공주의 말이기에.
서둘러서 아울렛을 나와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다.
택시 속에서 공주는 품에 안겨서 이쁘게 잠이 들기 시작한다.
같이 카페라도 앉아서 초라도 불려고 샀던 케익과 초 두 개는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채로.
내년에는 같이 초를 불 수 있겠지 공주?
내년에는 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아빠랑 같이 초 3개 불자!
그때까지 아빠도 열심히 살면서, 공주에게 더 좋은 거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될게.
더 좋은 데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큰 케익에 초를 불 수 있도록 할게.
사랑해 공주.
그날 저녁 전 사람이 동영상을 하나 보낸다.
초를 부는 법을 모르는 공주가, 초를 불어서 끄는 영상을.
처음 하는 촛불 끄기에 외할아버지와 엄마는 아주 신이 난 것 같다.
또 뭔가 짠해진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저건데.
그래, 그렇게. 내년엔 아빠랑 같이 불자.
생일 축하해 내 하나뿐인 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