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스쿨, 왜 가고 싶은거에요?
티비를 보다가 심지어 이제 로스쿨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예고편을 보고 ‘엄마나?’ 했다.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때 부터 로스쿨 입시를 준비한다는 얘길 듣기는 했는데 드라마까지 나온다고 하니 생각보다 로스쿨에 대한 관심, 특히 로스쿨 입시에 대한 관심이 꽤나 높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 꽤 오랫 동안 로스쿨을 가기로 한 순간, 로스쿨 입시 준비 방법, 로스쿨에서의 생활을 다뤄보려고 한다. 사실 이 글의 목적은 막연하게 변호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짜로 여러분은 왜 로스쿨에 가고 싶은 건가요? 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그리고 진짜, 로스쿨생이 학교를 다니는동안에는 못다한 얘기를 마저 하기 위해서다.
1. 법대는사실 그동안은 문과에서 공부 제일 잘하던 사람들이 가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변호사는 문과에서 가장 성공한 직업이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에 갈 때에는 문과에서 공부를 잘하면 법대에 가거나 경영학과에 갔다.
나는 영문학과 자유전공을 하는 인문대생이었고, 변호사니 사법고시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두꺼운 책이랑 싸워가면서 나의 20대 초반을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꽃피는 봄날에도 이가 덜덜 떨리게 추운 신림동에서 월화수목금토일도 없이 공부하고 있었다. 과외비를 받아서 사시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탕수육을 사주면서, 뾰족구두를 신고 전공책을 손에 들고 나풀나풀한 스커트를 입은 나는 이 친구들이 사시에 합격해 금의환향하더라도 하나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인턴도 하고 싶었고, 어학연수도 가고 싶었고, 유럽 여행도 가고 싶었다.
내가 대학 2학년이 되던 해였었나. 사법고시가 폐지된다고 하더니 미국처럼 로스쿨이 생긴다고 했다.
법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법률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어도, 신림동에 처박혀서 공부만 하지 않아도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정말로 그 때 까지만 해도 조금도 변호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자율 전공생인 내가 예술품을 사고 파는 일을 학부 전공으로 해보고 싶다는 신청서를 제출하자, 학장님이 약간 당황하시면서 미술 전공생도 아니니 아트 경영은 나중에 해도 재미로 공부해도 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법과대학 수업을 듣는 전공을 추천해주셨고, 그래서 수강신청을 했다. 그게 내가 이 길에 들어서게 된 가장 첫번째 선택이다.
법조계에 진출하게 된 후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랑은 좀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변호사이거나, 법대에 갈 성적이었기 때문에, 변호사 말고는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변호사가 된 문과의 1-tier였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왜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와는 관계 없이 이미 공부를 너무 잘해서 변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2. 변호사가 되면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정장만 입고, 샤넬 가방을 들고 뽐내면서 우아하게 일하는 줄 알았다.
로스쿨을 무사히(?) 3년만에 졸업하고 나면, 그 다음해 1월 변호사시험을 치고, 2월에는 졸업을하고 1월에 친 변호사시험의 결과가 그 해 4월에 발표된다. 그리고 그 전후로 6개월의 실무수습 기간을 거치면 드디어 혼자 재판도 갈 수 있고, 의견서에 이름도 올릴 수 있는 변호사가 된다.
[주. 이 아래로는 정말, 사람마다, 회사마다, 로펌마다 진심으로 천차만별이다.]
그 이후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실무수습기간, 이 때는 진짜 박봉을 받고 죽도록 일해야 한다. 일단 여기서 한 번 현타가 온다. 와. 내가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힘들게 시험을 통과하고도 이 돈을 받고 이 시간까지 일해야되는건가.
근데 이 때 제일 힘든건 따로 있다. 실무수습 이후 실무수습생 중 몇 명 만을 선별해 정식변호사로 채용하는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밤늦게까지 나와 함께 일하고, 내 푸념을 들어주고, 나랑 모든 순간을 같이 육두문자로 채우던 내 동기가, 내 적이 된다. 정식변호사로 채용되는 그 순간까지, 나는 내 동기가 제출한 과제에 뭔가 실수가 있길, 내가 낸 과제는 그 동기가 찾아내지 못한 뭔가 대단한 게 있었길 심지어 무심코 기도하게 된다.
그래도 실무수습은 6개월이고, 끝난다. 언젠간 나도 정식변호사가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변호사님,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왜 이런 취급 받으면서 이런 일 하는거에요?”
이 질문은 나의 첫번째 비서님이 나한테 처음으로 해주셨던 말인데, 너무나 마음에 남아서 6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변호사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 찾는 사람이다. 나는 그걸 모르고 이 업계에 들어섰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몰랐다.
회사에서는 내가 만나는 우리 회사 사람, 동기, 선배, 후배 모두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학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미친 사람들이 판친대도 사실 내가 만난 모든 회사사람들, 거래처 사람들은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너무 알 것 같아서 얄밉고, 짜증나는 그저 그런 거기서 거기인 미친 사람들이다.
형사 사건의 의뢰인이나 가족들은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형사처벌이라는 엄청난 기로에서 변호사를 찾은 사람들이다. 당연히 하루에도 열두 번씩 궁금한 게 생기고 이렇게 많은 돈을 주고 선임한 내 변호사가 내 일을 열심히 하는건지, 제대로 하는 건지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밤낮이 없다. 당연히 주말도 없다. 그 말은 변호사는 밤낮 없이, 주말, 휴일 없이 의뢰인의 전화를, 때로는 엄청나게 무례한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정말로, 종종 이 전화연락들은 매우 무례하다. 나는 진짜로 “내가 이딴 대접 받으려고 그 돈주고 변호사 산 줄 알아?”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어봤다. 주로 새벽에, 주말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열 번은 넘게 똑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했다는 이유로(심지어 그 돈 제가 안받았습니다. 저도 월급받아요). 원래 형사 변호사라는게 죄 지은 사람들 도와주는 일이라지만, 진짜로 죄 지은 사람들 도와주면 저런 나쁜 사람들도 돈만 주면 변호해 준다고 욕먹기도 한다.
형사사건이 아니면 괜찮겠지, 나는 M&A나 기업자문, 소송을 하는 멋있는 변호사가 될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상에. 이것도 완전 착각이다. 그야말로 자문은 아침도, 저녁도 밤도 없다. 주로 회사 사건은 그 회사 담당자가 퇴근하거나 퇴근을 준비하는 오후 5시-6시 부터 일이 시작된다. 그 시간에 갑자기 ‘내일까지 검토의견 주세요’한다. 미칠 지경이다. 로펌 변호사는 잠도 안자나? 아주 당연하게 금요일 오후 시간에 사건을 맡기고 ‘회의 해야 하니 다음주 월요일 오전까지 의견주세요’한다. 진짜다. 그래도 그 돈 주고 산 변호사여서 그런 일도 해야된다. 내 주말은, 저녁은 없다. 와. 이게 당연하다. 기업 사건, 자문 사건은 정해진 것도 참고할 만한 자료도 정말 잘 없다. 진짜, 몸빵이다. 하루 종일 매달려서 찾고 찾고 또 찾아야 그나마 의견서에 쓸 몇 줄을 건질 수 있다.
3. 이건 정말 내가 변호사가 된 이후 축적한 고통 중에 새발의 피다, 그래도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앞으로 쓰게 될 이 글이 여러분에게 절대 도움이 될 거다.
나는 오늘 그 말을 하고 싶었다. 변호사는 예쁜 구두와 좋은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들고 좋은데만 가지 않는다.
죽어라 일하고, 죽도록 일하고 밤낮없이 일한다. 그리고 항상 내가 한 일이 정말로 내 의뢰인에게 도움되는 게 맞는지 고민한다. 로스쿨만 졸업하면 공부도 졸업하는 줄 알았는데, 공부 졸업은 무슨. 하루 종일 공부한다. 하루 종일 책 찾아보고 하루 종일 누구한테 뭘 물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의뢰인은 나에게 100%만족하지 못하고, 배당받은 일은 쌓여간다. 하루에도 6번 정도는 울고 싶다.
그래도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로스쿨에 입학해서, 무사히 졸업하고, 무사히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6년 동안 변호사로 죽도록 일한 내가 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Are you re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