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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지뉴 Mar 10. 2021

멀쩡한 직업을 두고 로스쿨을 가려는 분들께

(2) 이미 너무나 좋은 직업을 가지고 로스쿨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내 이야기다. 


나는 휘황찬란하게 2개의 전공과 1개의 부전공, 그리고 수개의 인턴경험과 해외 연수 경험을 가지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좋은 회사에 했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금융권의 공기업같은 사기업으로 전 직원 108명 규모의 아주 작지도, 그렇다고 아주 크지도 않은 회사였다. 음. 회사 복지가 지나치게 좋았고, 일은 힘들지 않았으며 나는 3년만에 뽑힌 정직원이었다. 


한 3개월 정도는 정장을 입고, 무려 여의도에 출근한다는게 가슴벅차게 좋았다. 나는 회사에서 한 시간 쯤 거리에 살았는데, 출근시간이 9시 30분까지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7시 20분에 출근했다. 그 때는 졸업하자 마자 좋은 직장을 가진 것, 회사의 막내로 졸업식 날에는 학교에 갔다가 팀원들이 주문해준 꽃바구니를 받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여름 즈음이었나. 입사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슬슬 업무가 손에 익어 가자 회사와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융권은 인사철이면 피바람이 분다. 실적이 없는 A팀장의 책상이 다음날 없어졌다더라 하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B임원은 재계약이 안돼 당장 내일 실직자라고 했다. 와. 내가 그렇게 까마득하게 올려다보던 이사님인데 당장 내일 실직이라니. 직업의 세계는 원래 이렇게 흉흉한 것인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리트(LEET, 법학적성시험)는 7월 쯤 치러진다. 나는 사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리트 시험을 쳤었다. 나와 같은 전공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시험을 치길래 한 번 쳐봤는데 대-애충 인서울 정도는 할 점수가 나왔었다. 입사를 하고 난 후 처음으로 휴가를 낸 날, 나는 리트 시험을 치러 갔다. '로스쿨에 꼭 입학하고 말거야!'는 아니었고 한 번 더 치면 점수가 좀 더 잘나올까 싶어서였다. 아직도 리트를 치는 날 시험장이 어땠는지 시험은 잘 쳤는지 긴장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그 날 시험을 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랑 같이 압구정 카페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오후 두시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했던 기억만 난다. 


결국 나는 투입한 시간 대비 꽤 높은 리트 점수를 받고 성균관대와 한국외대에 지원서를 접수했고 2013년에는 한국외대 로스쿨에 5기로 입학했다. 이게 내가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 스토리다. 정말 별 게 없다. 괜히 한 번 리트를 치러 갔고, 점수가 생각보다 잘나왔고, 그래서 로스쿨에 입학했다. 나는 법조인에 핑크빛 꿈을 가진 것도, 휘황찬란한 직업을 가지고 싶었던 것도, 전문직으로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로스쿨에 가면 내가 뭘 할수 있는지도 알 지 못한채로 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 종종 나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고, 1학년 때는 AICPA를 마저 따겠다고 로스쿨 공부를 뒷전으로 하다가 땅을 치고 후회하고, 그래서 수많은 기회를 놓쳤다. 이 글은 순전히 3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최고의 결과(OUTPUT)을 보여주어야 하는 로스쿨 생을 위한 글이다. 부디, 제발 로스쿨에 입학한 분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1. 로스쿨은 학교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교 성적을 잘 받는 것'이며, 그 비결은 '교수님이 까라면 까는거'다


우리 학교 정원은 50명이었는데, 그중 5명 정도가 사회 생활의 경험이 있었다. 


좋은 회사를 다니다가 로스쿨에 입학한 많은 분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 지금 겨우 이딴 일을 시켜?'라는 생각을 갖는거다. 실제로, 1학년 헌법시간에는 교수님이 숙제로 헌법을 종이에 그대로 베껴오라는, '깜지' 숙제를 내 주신 적이 있는데 좋은 회사를 다니던 어떤 학생이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황당한 숙제를 해야해?'라고 했었다. 진짜다. 깜지를 숙제로 내는 교수님도 진짜고, 그 숙제를 보고 '내 나이가 몇인데'하는 학생도 진짜다. 


회사를 다니다가 로스쿨에 입학한 이 대단한 인재들은 자주 사회와의 연을 놓지 않기 위해 1학년 때는 모임에 나가느라 공부할 시간을 많이 빼먹기도 하고, 사회 짬을 먹었다는 이유로 학생으로서의 일을 종종 경시하곤 한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세다. 이미 회사에 다녔다가 로스쿨에 입학한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하는 자세다. 일찍 학교를 졸업해, 좋은 직장에 다녔던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학교에서 시키는 일 중에 '별 것도 아닌 일'은 없다. '사소한 것'도 없고, '유난스러운 것'도 없다. 



2. 로스쿨을 졸업하면, 당신이 가장 큰 무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 그 실무경험은 아무 소용이 없고, 당신의 나이는 약점이 된다


나는 영어를 잘했고, 회계와 재무를 알았고 그와 연관된 실무경험도 있었다. 내가 로스쿨에 입학한 나이는 26살이고,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변호사시험에도 바로 합격해 30살에 변호사가 됐다. 나도 내 동기들 중에서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졸업할 때 즈음에는 회사를 다니느라 보낸 1년이 너무 아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로스쿨의 도입 취지 자체가 다양한 경험, 다양한 전공을 한 사람들이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실무 경험을 한 후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이 더 좋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법학 공부는 85%가 암기이다. 암기를 잘하려면 체력이 좋고 뇌가 쌩쌩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필연적으로 공부에서는 뒤쳐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체력과 학점을 나의 실무경험이 메꿔주느냐, 그것도 아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사람중에 학부에서의 전공을 살려 직업을 찾은, 직업을 찾는데 도움을 받은 경우는 


(1) 학부에서 건축학이나 공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 - 건설 소송에  유용하다. 

(2) 학부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약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 - 대형로펌에서 좋아한다.  

(3)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계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 - 대형로펌과 검찰에서 좋아한다. 


외에는 없다.


내가 만난 로스쿨 진학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개, 은행원, 기자였다. 미안한 얘기이지만, 이 경험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그냥, 이런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 경력을 쌓아 로스쿨에 가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뇌가 쌩쌩할 때 빨리 로스쿨에 입학하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이는 공부할 때도, 취업을 할 때도 중요하다. 

 


3. 최근 변호사 시장,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다. 


쓰다 보니 내가 왜이렇게 부정적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실이 그렇다. 당신이 만약에 튼튼한 직장을 가지고 있고, 여자이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고 그럭저럭 연봉에도 만족한다면 굳이 로스쿨에 욕심낼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험하고, 바쁘고, 힘들면서도 연봉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로펌에는 출산휴가가 없다. 몇 몇 대형로펌을 빼고는 임신한 여성에게 업무에서 편의를 주기도, 출산 후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갖도록 출산휴가를 주기도 어렵다. 우리의 사건은 매일 돌아가고, 내가 빠지면 그 자리는 금세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다. 그러니까 로펌은 여성들에게 좋은 직장이기는 어렵다. 그냥 쉽게 그만 둘 수 있는 만큼 쉽게 일자리를 찾기는 쉽다. 그 정도이다. 


음. 여자로서, 또 변호사로서 느끼는 고충은 이 글 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쓰게 될 수많은 글에 등장한다.



고등학교 때 부터 착실하게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사람들 말고, 나는 진짜 더 좋은 삶, 나의 자아를 실현하는 삶을 꿈꾸면서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썼다. 


정말로 미안한 얘기지만, 당신이 이미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이미 너무 직장인으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로스쿨은 당신을 위한 선택이 되기 어렵다. 로스쿨은 공부벌레가 되기 위해 마음먹은 뇌가 쌩쌩하고 야망이 넘치는 어린 친구들이 독을 품고 공부하는 곳이다. 그리고 로스쿨 3년의 시간은 매일 등수와 시험과 성적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평가의 시간이고 이렇게 쌓인 평가 점수가 단 한번의 변호사 시험으로 좌우된다. 


경쟁을 즐기고, 엄청난 양의 공부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손가락 뼈가 비틀어질만큼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친구를 만날 시간을 줄이고 티비는 하루에 한 시간만 봐도 충분하다면, 공부하는 순간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도 A+이 쓰여진 성적표를 보고 더 행복한 기분이 든다면 로스쿨에 입학할 준비가 된 것이다. 


WELCOME TO HELL. 


다음 글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고의 리트(LEET)시험 성적을 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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