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인 전자음악을 위한 스튜디오 라이브 "Noisoom"
크리티컬 리스닝 커뮤니티에서 제작하는 전자음악 전문 공연 노이즘 (Noisoom) 2024년 7월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아티스트 'MinOhrichar'님의 인터뷰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MinOhrichar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남민오라고 합니다. 현대미술 계통에서 미디어 아트 설치, 사운드 아트, 그리고 미디어 리서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리서처라고 소개해주셨는데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직역해보자면 ‘설계’이거든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사용자 경험 설계, 혹은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설계를 공부했어요. 미디어를 중심으로, 미디어에 의한 노이즈에 대해서, 그 노이즈로 은유할 수 있는 사회적 고통과 그것을 수용하는 경험 설계를 중심으로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술가로 활동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학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시각적인 것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데에 익숙해졌고 여기에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지를 아는 것도 포함되어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직접 만들다보니 결국 여기에 속이는 지점, 환영이 있다는 걸 알게 된겁니다. 함께 디자인을 공부한 친구들은 스튜디오를 차리거나 기업에 취업한 경우도 많았지만 저는 결국 그 비판적인 태도가 더욱 강화되었어요. 대학원으로 진학해서도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상업적인 분야의 연구보다는 아름다운 시각 이미지와 스펙타클의 뒷면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미지의 뒷면이라는 것이 결국 노이즈와 연결되는군요.
보통 컴퓨터같은데서 말하는 디지털적인 노이즈는 해결해야 하는 것, 지워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쉬운데요, 사실 사람들의 노이즈 그러니까 삶의 고통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거나 덮어쓰기 되지 않잖아요? 잠깐 밀어내고 잠깐 잊을 수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진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러한 노이즈는 지우거나 덮어놓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작업의 측면에서 어떻게 ‘파괴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을까’라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어떤 가족상이라던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같은 것들. 이런 것들이 전에는 개인의 고통을 수용할 수 있는 버퍼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대 사회에서 개인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런 버퍼는 사라져만가고, 이때 고통의 문제를 포용하거나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냥 없는 것으로 (노이즈를 지우려고만) 하는 기조가 생겨버린 것 같아요. 실제로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기술적인 정치나 기술적인 시스템으로 그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보이게 바꿔 버리는 것이죠. 이런 문제들을 심리 상담이라던가 직접적인 부분에서 노력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 경우에는 이것을 미술이나 시각, 혹은 경험의 설계라는 부분에서 표현하는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컨템퍼러리 아트가 가지고 있는 태도와 맞아떨어지며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시작은 디자인, 그리고 시각 예술에서 활동하셨는데 그럼 사운드 아트로의 전환은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궁금합니다.
노이즈, 글리치, 그레인과 같은 요소들을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것들이 시각적인 차원에서는 사람에게 있어 너무 쉽게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매력적으로 미화되기 쉬워요. 그런데 청각적인 노이즈는 비교적 참기 어렵다고 느끼거든요. 어쩌면 후각의 경우도 강한 자극에 쉽게 익숙해지는 편인데 청각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특징들이 저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다루는데 굉장히 적합한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노이즈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이 노이즈를 어떻게 조율하는지 분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꼭 음악이야, 꼭 미술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으시는거네요.
저는 상처나 고통의 문제 같은 것을 다루는 작업을 하긴 하지만요, 이것을 그 자체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매체를 통해서 문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잖아요? 그런 점에서 미디어 리서처라는 소개를 드린 것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분석하고 나열해 놓으면 어떤 패턴을 찾게 됩니다. 그럼 이것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정이고요. 현상을 그저 설명하는 데에서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저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드릴 때 더 와닿는 것 같아요.
박사 논문도 같은 주제이신데, 그때 연구를 일단락 했다기보다는 현재까지도 계속 진행 중이신 것 같습니다.
10년 정도 이 고통의 경험에 대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긴 시간동안 오로지 이 작업만 있다고 할 수는 없고요, 다만 다른 어떤 영상 작업도 있는데 그것도 벌써 5년 정도 천천히 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다양한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주로 공연을 통해 활동을 하시는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지역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해남에서 노이즈 공연을 했습니다. 지역 폐교 시설을 빌려서 진행된 퍼포먼스였는데요, 평소 미술관이라던가 이 Noisoom 공연 같은 것은 아무래도 이런 공연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를 한 사람들이 보러오는 것이라면 이렇게 완전히 랜덤한 사람들 앞에서 노이즈 공연을 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공연 봐주셨던 할머니들이 참 좋았다고 해주시고, 약간의 설명을 해 드리니까 어렵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거든요. 작가로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작업 계획도 혹시 있으신가요?
개인적인 작업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인데요, 정말 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대규모 전시를 한번 열어보고 싶습니다. ‘잡담’이라는 것을 컨셉으로 잡고 있어요. 시각 예술, 소리 예술,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분들과 함께 ‘성공하지도 않고 실패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잡담이라는건 말의 내용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누구와 얘기했느냐가 중요하잖아요? 그것이 이 프로젝트의 큰 테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공연의 키워드인 ‘노마디즘’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주신다면요?
인터뷰를 진행하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노마디즘에 대해 긴 생각을 가졌습니다. 노마디즘: 기존의 가치와 방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불모지를 찾아, 다시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태도. 저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이 태도에 익숙합니다. 많은 것들에 관심과 시선을 두고 언제나 반짝이는 것을 따라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엮어 작업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삶은 가진 것은 없지만 늘 맥시멀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불안을 내포합니다. 전념하고 싶지만 머무를 수 없고, 시간을 두고 아끼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노마디즘의 삶을 살아가는 이는 불모지를 가능성의 땅으로 가꾸지만, 그는 금새 그곳을 떠납니다. 이런 삶에서 중요한 것은 미련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형적 삶을 살아가는, 그래서 미래에 삶을 의탁하고 정주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민은 특히 대한민국의 낮은 컨트라스트, 큰 변화가 없는 삶 속에 타인을 감각하지 못하고, 결국 타인을 발견할 수 없어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마디즘은 새로운 터전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떠날 곳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타인-소음을 인식하는 것, 사회가 그것을 지우거나 파괴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티스트 MinOhrichar의 Noisoom 공연 보러가기 :
https://youtu.be/CotADuzI-DI?si=T_--3AjeuIyY-D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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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컬 리스닝 커뮤니티 Critical Listening Community
https://www.instagram.com/clc_noisoom/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