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ular Poetry
PORABIM
7월 노이즘의 무대는 라이브 프로젝션 매핑이나 화려한 비주얼 없이도 감각을 압도했다. 그 중심에는 모듈러 신디사이저가 있었고 나는 왜 대중적인 음악에 익숙한 내가 이 낯선 사운드 속에서 깊이 몰입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운하임리히(unheimlich)’라 발음되는 독일어 단어는 ‘불편함, 섬뜩함, 정서적 불안’ 등을 뜻하며, 영어로는 ‘uncanny’로 번역된다. 단순한 낯섦을 넘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두려움, 그것이 바로 언캐니가 주는 감정이다. 이날 공연의 두 번째 퍼포먼스 제목이 바로 ‘unheimlich’였다. 제목을 알지 못한 채 공연을 관람했지만, 언캐니한 감정은 명확히 느껴졌다. 마치 익숙한 언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한 시적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같았다. 소리 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서라기보다, 이어질 전개를 궁금하게 만드는 몰입과 감정의 강렬함 덕분이었다.
세 개의 퍼포먼스 중에서도 두 번째와 세 번째 무대에서 특히 특별한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공통점은 BYEONGJI 작가였다. 내가 찾은 답은 바로 ‘사운드 조형 과정의 관객 체험’에 있다. 연주자의 몰입과 감정 변화가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경험, 그 자체가 공연의 핵심이다. 모듈러 신디사이저는 연주자가 노브를 직접 돌리며 전기 신호를 조작하는 물리적 감각과, 시각적·촉각적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렇게 공연은 단순한 사운드 전달을 넘어, 관객이 사운드 조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병지 작가는 이 점에서 탁월한 표현력을 보여주었고, 나는 이러한 인간적·퍼포먼스적 요소가 앞으로의 전자음악에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BYEONGJI 작가의 퍼포먼스 덕분에 세 번째 무대 ‘XX(Extended Version)’ 역시 강렬한 몰입을 만들어냈다. 전세계와 BYEONGJI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동료애, 인간, 전자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탐구하며, 그 안에 담긴 다채로운 감정을 드러냈다. 두 사람이 모듈러 신스를 조작할 때마다 마치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 연속적으로 ‘출시’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는 그들의 사운드가 트렌드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레디투메이드 같은 세련된 완결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전세계 작가의 단독 퍼포먼스도 궁금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BYEONGJI와의 호흡 속에 짧게 등장해 아쉬움을 남겼다.
첫 번째 무대에서 Yujii, SINBI, Somker는 또 다른 결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변형)’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는 욕심 부리지 않은 세련된 앰비언트 하드테크노로, 귀여움이 묻어나는 사운드 디자인과 단단한 테크노 비트를 결합하여 쾌적하면서도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이날 공연 전반을 관통한 것은 모듈러 신디사이저였다.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장비도 몇 개 뿐이지만, 나는 이 악기가 미래 음악의 핵심적 도구가 될 잠재력을 지닌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단순히 소리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운드를 설계하고,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치다. 수천 개의 모듈 중에서 선택하고 조합하는 과정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오직 그 순간 그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세계를 형상화하는 행위다.
모듈러 신디사이저의 연주는 더 나아가 미학적 실천이다. 소리를 다루는 기술적 행위를 넘어, 소리 자체를 탐구하고 존재의 울림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미래에 AI가 생산의 굴레에서 인류를 해방시킨다면, 우리는 취향과 자아실현이라는 차원에 몰두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만의 모듈러를 통해 소리라는 언어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1인 1모듈러’의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아티스트의 Noisoom 공연 기록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ano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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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티에르 Anotier
https://www.instagram.com/anotier.official/
글, PORABIM
사진,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