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아트 공연 리뷰 : Noisoom 6월

by 강민구

다시 찾은 놀이세계


PORABIM


어렸을 때 내가 생각하는 놀 줄 아는 아이(자신의 놀이세계를 만들 줄 아는)들은 전부 내향적이었다. 남들 앞에 잘 나서려고 하지 않았고 혹시라도 자신의 놀이를 들키게 되면 수줍어하는,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몰입의 즐거움에 빠져있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어른이 되고나서는 그런 놀 줄 알던 아이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는데 6월 노이즘 공연에서는 특별히 그런 기운으로 똘똘 뭉쳐 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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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순서였던 마리나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볼 수 없게 가리고 등장했다. 처음에는 시계를 찬 팔과 노브를 돌리는 손가락이 떨리는 게 보였지만 한바탕 사운드 회오리를 만들어내고 조심스럽게 레이어를 추가하며 새로운 테마로 전환하며 과감하게 전개해 갔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대의 믹서가 놓여있었는데 그녀는 여러 대의 믹서끼리 피드백을 주고 받도록 하며 자신만의 놀이를 전개해 갔다. 노브를 돌리는 손은 점점 바빠지고 떨리던 손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어딘가 배려심 있는 노이즈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사운드 포화상태가 일어나고 거침없는 사이렌이 한동안 지속되기도 했지만 공격적이거나 충격적이게 느껴지기보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더피처럼 엉뚱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예의 있는 몬스터, 배려심있는 노이즈가 느껴지는 그녀의 공연은 독특한 무드를 풍겼다. 관객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공연이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하이탑 컨버스를 신은 발을 조심스럽고도 신나게 까딱거리며 충분히 자신만의 놀이에 빠져 들었다.

아티스트 인터뷰 때 그녀는 이번 공연에서 대치동 학원가의 빠져나갈 수 없는 교착상태를 표현했다고 했는데 이번 공연은 마리나의 믹서놀이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교착상태인 것 같았다. 그만큼 천진난만함과 엉뚱함이 매력인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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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태의 공연은 공장가동소리같은 굉음으로 시작했다. 공장의 동작이 점점 느려지더니 유리로 만들어진 엔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유리부품들이 부서지고 터지고 부딪히고 튀겨지면서 노이즈 파편이 입체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튀어올랐다. 도파민이 반응하게 하는 감각적인 소리였다. 충분히 달콤하고 흥미로운 와중에 본격적으로 소리 장난감 놀이가 시작되었다.

엄마 몰래 가전제품을 분해해서 개조하는 어린아이처럼 이상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앉은 진상태 작가가 얌전하고 발칙하게 놀이를 시작했다. 하드 드라이브에다가 운동성을 기반으로 이런 저런 오브제들을 트리거로 사용해 음악처럼 작동하게 만든 연주(라고 나중에 아티스트 인터뷰 때 진상태 작가가 직접 설명했다)였지만 그냥 봤을 때는 어떤 고물상에서 주워온 것 같은 잡동사니들을 테이블 위에 잔뜩 올려놓고는 자꾸 이상한 스프링을 감고 돌리고 하며 랜덤한 소리가 발생하게 하는 것을 지켜보는- 숨막히게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의 공연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귀를 쫑긋 세우게하는 매력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와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놀이의 모든 것이 그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진지한 표정이지만 사실은 한 없이 쓸데없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 우연한 물성끼리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소리의 발생, 완성을 향해 가거나 악보를 따라가는 게 아닌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의 연속.

나중에 아티스트 토크 때 알게 된 것은 공연 때 매우 재미있어 보였던 스프링이 그가 한창 스프링을 찾고 있을 때 한 레바논 뮤지션이 그냥 자기가 쓰던 것을 툭 잘라서 준 것이라는 것과 알리에서 1개 당 1달러 정도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 하찮은 것들이 우연, 혹은 필연으로 만나서 악기를 이루고(그의 표현에 따르면 ‘근본 없는 악기’) 그 쓰임을 찾아가는 그의 놀이는 어린시절에 꿈꾸던 놀이에 대한 노스텔지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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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산의 공연은 아주 느린 바이탈 사인 같은 신호음들이 느리게 던져지며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길게 깜빡이듯이, 혹은 별똥별이 밤하늘에 낙하하는 소처럼 빛을 내는 소리들이 길게 포물선을 그리다가 멈추었다. 레트로한 알람 소리가 울리더니 하얀 접시 위를 회전하는 네 개의 오브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춤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왔다 갔다 하는 오브제들의 움직임은 느린 발레 같기도 했는데 반대쪽에서는 휴대용 선풍기가 빛을 내며 회전하고 있어서 기묘함이 증폭되었다. 접시 위의 오브제들도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움직였고 선풍기는 관객을 향해 레이더를 쏘듯이 빛을 내며 느리게 회전하는 바람에 관객 입장에서는 마치 무슨 최면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케스트라처럼 촘촘히 쌓아올려지는 그로테스크한 사운드와 나름대로 이상한 질서에 따라 조화롭게 움직이는 사운드(나중에 왜 사운드가 움직이는 것처럼 들렸는 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를 들으며 마치 한 편의 마술쇼, 혹은 심령술사의 의식을 엿보는 것 같기도 했다.

몽환적인 소리와 빛을 내며 움직이는 신비한 오브제들로 넋을 빼 놓던 공연은 ‘누가, 언제, 무엇을, 누가, 어디서, 우리, 누가 누가 누가 무엇을 어디서 해, 왜, 왜”라는 말소리를 내뱉다가 “왜 왜 왜 무엇을 어디서”라는 말소리로 페이드아웃되면서 끝이 났는데 공연의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에 마지막 말소리들은 무슨 주문(Spell)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티스트 토크 때 들어보니 접시 위에 돌아다니는 친구들과 빛을 내는 선풍기는 ‘장난감’이라 부르는 직접 만든 것들로 각각 웨이브 트리거를 사용해서 라이트를 찍어주는 샘플러와 초지향성 스피커라고 했다. 샘플러는 눌러야 하는게 고정되어있다면 이건 빛에 따라서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했다.

그는 늘 자신의 공연이 너무 시끄럽지 않을지, 지루하지 않을지 고민하며 공연시간을 점점 줄이고 있다고 했는데 오히려 영화나 극 한 편 정도의 길이로 구성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운드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독특한 미학이 있는 공연이라 홀린 듯이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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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렸을 때 누구나 자연스럽게 놀이를 했다. 놀이에는 목적이 없고 제한이 없고 평가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놀 수 있는 어른은 많지 않은데 더이상 목적 없는 일을 잘 하지 않게 되고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현실적인 제약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리기 때문이다. 어느새 재미 없어진 어른들은 다시 재미를 찾아나선다. 6월의 노이즘 공연에서는 비진지성, 우연성, 비최종성을 갖는 진정한 놀이, 재미를 되찾은 어른들의 놀이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감히 그들의 놀이에 대해 논하기보다 여전히 놀 줄 아는 그들의 놀이에 끼고 싶었던 구경꾼의 마음을 썼다.



아티스트의 Noisoom 공연 기록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ano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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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티에르 Anotier

https://www.instagram.com/anotier.official/


글, PORABIM

사진,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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