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만난 느림의 미학

다양한 개개인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by 밍글

2013년 여름부터 2014년 여름까지 프라하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간 머물었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그전까지 다른 나라에 여행이나 해외봉사 등으로 체류했던 경험은 종종 있었어도 타지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건 그 나라에서 정한 많은 기준들에 나의 삶의 양식을 재조정해야함을 의미했다.


휴대폰을 개통하려면 현지 통신사에서 그 나라 번호를 받아서 사용해야했고,


한국식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우니 먹는 음식들도 빵과 고기, 야채 위주로 바뀌었다.


프라하 생활 내내, 새로 마주한 '트램'이라는 교통수단은 내 발이 되어주었다.









학교 가는 길, 빨간 트램



트램을 타고 매일 시내를 이동하는 일상생활 가운데 제일 눈에 띄었던 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체코 사람들의 '시민의식' 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체코 사회가 가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식'이 시스템에 녹아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의 지하철을 흔히 '지옥철'이라 부를만큼, 한국에서의 출퇴근시간 대중교통은 거의 생존 게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체코에서는 휠체어를 탄 한 명의 승객을 위해 트램 기사 아저씨가 내려 직접 휠체어 전용 문턱을 열어주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운전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탄 승객도 이런 상황이 자연스러워보였고, 엄청난 저자세가 아닌 '데꾸유(체코어로 감사합니다)' 한 마디로 인사를 건넸다.


같이 트램을 타는 주변 승객들은 잠시 잠깐의 멈춤과 기다림이 전혀 어렵지 않아 보였고, 아무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한국인인 나에게는 인상적이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은 고사하고 지상에서 다니는 버스에조차 장애인을 위한 매뉴얼이 전무하다.


설령 규정이 있다고 할지언정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대중 버스의 시스템은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운전하는 사람도 바삐 움직이게 만든다.


세계은행에서 발행한 국가별 GDP 순위를 보면 대한민국은 무려 13위를 자랑하며, 실질 GDP로 따지면 약 2,300조원에 달한다.


이는 체코가 가진 GDP의 5배에 달하는 수치지만 우리의 대중교통 시스템과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녹아있는 배려는 결코 숫자에 비례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뭐든 빨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조금 느리게, 천천히 간다고 해서 삶의 속도가 더뎌지는 건 아니라는 걸,


저마다의 모양으로 다양한 개개인의 권리가 각자 존중받는 사회가 더 건강할 수도 있다는 걸,


블타바 강이 바라다 보이는 다리를 프라하 트램을 타고 건너면서 자주 생각했다.



시민 모두가 쉴 수 있는 흔한 공원 풍경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