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게 필요한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경험은 많이 해보면 해 볼수록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반쯤 동의하고 반 쯤은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경험은 삶에 도움이 될 때도 있어서 반 쯤 동의하고 반 쯤은 동의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주로 미련이 많아서 지나간 일들을 자책하고 후회하는 편이었다. 나에게 그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이 일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것들.
모든 일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안 좋은 기억은 흐릿해지고 그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노력해도 결과가 아쉬울 수 있다는 것, 친한 사람들끼리도 아름다운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등등. 그리고 그 경험들 덕분에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경험들은 너무 치명적이어서 그 경험을 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한 번 상처가 나면 아주 미약하게나마 흉터가 남듯이. 그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
나에게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이 그랬다. 엄마의 투병 기간 중 나를 다치게 한 여러 사람의 말과 행동들. 여전히 5월은 아프고 6월은 슬프다.
굳이 이런 경험까지는 필요없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아직도 나는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좋지 않은 경험을 어떤 식으로 승화시켜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보이는 걸 다 믿으면 안된다는 것과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뭐라도 배운걸까.
반면에 좋았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스펙트럼이 넓고 속이 알찬 사람이 되었다. 행복한 경험, 성공했던 경험 그리고 내가 시도했던 도전에 지지를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게는 오늘 시도했던 오이토스트의 성공부터 크게는 필라테스에서 어린 시절 팔이 골절된 후로 한 번도 타지 못했던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것까지.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때 존 듀이의 <경험중심적 교육 이론>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이론인데 그 때에도 지금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주변에서 이야기를 해줘도 본인이 경험하고 깨닫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을 믿는데 오래 걸리는 이유도 과거의 내가 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또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도 성공 경험들이 쌓여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가치관, 생활 모습, 주변에 있는 사람 등 많은 것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많은 것들로부터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마련된다.
교통사고처럼 발생하는 경험 말고 내 의지로 선택하는 경험에는 더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야 하는 이유다.
얇디 얇은 마음을 가지고 잘 버텨보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