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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Aug 25. 2022

18. 행복하다고 말하기 두려운 사람

다경아,


나는 오늘 그림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야. 그냥, 네게 편지를 쓰기로 했어.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졌거든. 나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 아니, 믿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행복하다는 것이, 그러니까 순수하게 행복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자아를 발견하기 전의 아기들에게나 가능한 것 아닐까? 나에게는 행복이라는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져. 이건 마치 ‘사랑해’라는 말을 무서워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심리인 것 같아. 행복이 무엇일까?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존재는 할 수 있는 개념일까? 


나는 ‘행복하다’라는 말보다 ‘마음이 편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덜 부담스럽더라고. 거기에는 ‘완벽하게’ 좋은 것이라는 개념이 없어 보이거든. 행복은 뭔가 완벽해야만 할 것 같아.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 두려운 단어이고.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행복을 신화처럼 여기고 우울한 감정을 자양분으로 삼아 사는 것일까? <너에게만 알려 줄게>에 나오는 작가의 짧은 메모들 같은 문장을 읽으면 나는 거기서 희망이나 행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말 같다는 생각을 해. 


‘천천히 답을 찾아봐.’ ‘계속 가는 거야.’ 


삐뚤어진 나는 그 말들을 보며 생각하지. 


‘무책임하군. 답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으라는 거지? 어디를 계속 가라는 거야? 어딘 줄 알아야 가지?’


정말 답 없는 생각이지? 이게 다 내가 내면의 길을 잃었기 때문이겠지. 타지에서 오랜 독박 육아로 힘들었던지 주치의에게 심리 상담을 받아보란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 나는 그저 가벼운 우울감이라고 생각하고 의사의 충고를 무시한 채 억지로 나를 움직였지. 그런데 어느 날 길을 달리다 갑자기 퍼져버린 자동차처럼 내게 공황장애 발작이 왔어. 그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 쉬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긴 했는데, 이 날은 숨이 쉬어지지 않고 온 몸이 저리더니 마비가 오더라. 결국 난 응급실에 실려갔고 여러 가지 검사 뒤에 신체에는 문제가 없으니 신경정신과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결국 주치의 말 무시하고 달려온 자의 최후라며 자책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어. 어쩌겠어. 꼭 이렇게 끝까지 가봐야 정신 차리는 사람이 나 인걸. 아무튼 그 뒤로 여러 가지 약을 먹는데 아직 적응하는 기간이라 그런지 많이 피곤하고 무기력해. 이런 상태의 나는 요즘 아이들이 길을 찾는 일을 도와줄 수가 없어. 아이들은 엄마가 약에 취해 쓰러져 자는 시간에 혼자 시간을 때우며 자기의 길을 찾든,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든, 심심하다고 뒹굴며 투덜대거든 하겠지. 아이들 키우는데 무척 열심이었던 내가 이러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해.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피곤해도 한 번 더 웃어주려고 노력하고 따뜻한 말이나 공감을 건네려고 노력하고 있어. 예전처럼 함께 놀아주거나 모험을 하는 건 못하고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을 믿는 것뿐이구나 싶더라. 그리고 마음 편한 아이로 키우려면 결국, 내가 마음이 편하고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어. 아이에게 무엇을 경험시켜주고 어디를 데려갈까, 어떤 책을 보여줄까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인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언제 마음이 편한 사람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겠더라.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고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결정하는 것, 그 마음의 절반을 나를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갈 길이 멀다! 나를 뒤에 두고 아이들이나 남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 절반을 내게 쓰다니! 하지만 그렇게 해야겠어. 그래야 좋은 엄마, 아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야 다시 아이들과 웃으면서 놀 수 있을 것 같아. 그리하여! 내 목표는 바뀌었어. 아이들을 잘 돌보고 그들과 잘 놀아주며 뒤에서 열심히 도와주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과 공존하는 엄마가 될 거야. 함께 놀고, 함께 하고, 함께 꿈꾸는 엄마 말이야!


맙소사. 나, 이거, 할 수 있을까? 방금도 이 글을 쓰는데 아이들이 쳐들어 와서 내게 놀아 달라고 하다가 둘의 싸움으로 끝나는 걸 한 숨을 쉬며 보고 있었는데. 


그래도 네 말대로 잊지 않는다면 노력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완벽하지는 않아도 대부분은 마음 편한 사람들로 자라날 수 있겠지. 나도, 아이들도. 나도 그렇게 믿어보련다.


또 이야기 나누자.



2022.8.21

네 마음도 편안하길 빌며,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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