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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Aug 08. 2022

17.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방법이 뭘까?

그림책 <애나는 발레리나>, <너에게만 알려줄게>

언니,


나는 언니 편지를 읽고 나서 <애나는 발레리나>라는 그림책이 떠올랐어.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애나라는 아이가 주인공인데, 애나는 특히 수학을 정말 싫어했어. 당연히 학교는 재미없고 성적도 좋지 않았지.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편지가 오는데, 애나가 구구단을 다 외우지 못하면 이번 학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는 거야. 엄마는 애나를 수학 학원에 보내는데 학원에서도 애나는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어. 엄마는 애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는데, 의사 선생님은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심리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보라고 하지. 애나는 자기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른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 슬펐어. 그림에서 애나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지만 축 처진 어깨에 멘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보여서 애나의 뒷모습이 참 안타깝더라.

애나는 자기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른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애나는 슬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심리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선생님은 애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라디오를 켜 주는데, 애나는 음악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잊은 채 말이야. 그 모습을 본 심리 상담 선생님은 엄마에게 말하지.


“어머니, 애나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제 보니 애나는 발레리나로군요.”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발레를 시작한 애나는 그때부터 발레학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발레를 하면서 구구단을 외우면 더 잘 외워진다는 것도 알게 돼. 학교생활이 즐거워진 애나는 수학시험도 거뜬히 통과하지.

언젠가 애나는 큰 무대에서 춤을 추게 될지 몰라요.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애나는 계속 발레를 할 거예요.


언니 말대로 아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발전시켜 주는 것, 그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하게끔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 이런 말도 있잖아.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이제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우주만 봐도 자기가 재미있고 관심이 가는 것이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그것에 빠져 들어서 하는 게 보여. 처음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있을 때는 30분 넘게 혼자 방바닥에 앉아 여러 가지 색을 섞어가며 그림을 그렸고, 요즘은 숫자에 빠져서 시키지도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아는 숫자들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도화지 한가득 빼곡하게 그려 넣고 있어. 숫자를 쓸 때는(사실 쓴다기보다 모양을 비슷하게 그린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긴 해.)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대꾸도 안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 수십 분을 혼자서 시간을 보내. 맨날 놀아달라고, 제발 같이 놀자고 징징대는 녀석이 말이야. 아마 내가 숫자를 가르치겠다고 마음먹고, 학습지나 워크시트 같은 걸 이용해서 숫자를 쓰게 했다면 우주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도 언니가 말한 것처럼 우주가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가지 함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주기 위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다는 거야. 아이가 많은 경험을 해봐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글쎄, 정말 그럴까?




아주 예전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ADHD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글귀가 있었어.


“내가 아는 많은 부모들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 부모라는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자기 부모보다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너무나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육아에는 숨은 비용이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 해내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욕구와 리듬을 스스로 관리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모험과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 프로그래밍된 유년기와 자기 절제력을 상실한 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급증하는 현상 간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확신한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는 미디어센터에서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프로그램 중에는 유아나 어린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도 많이 있었어. 그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느꼈던 건 요즘 아이들이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살고 있고,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다는 거였어.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지.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행복해지도록 돕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부모가 앞장서서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끌고 가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할 일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전에 아이들이 기진맥진해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정말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보습학원 다니기 바빴던 언니가 연극영화학과에 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건 조기교육이나 다양한 체험이 아니라 언니가 언니 내면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난 생각해.


오늘 언니에게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 <너에게만 알려줄게>는 자기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그 안에 행복의 비결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책이야. 이 책은 ‘피터 레이놀즈가 전하는 행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작가 본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에게 쓴 책 이래.



여기, 눈을 감고 가볍게 뛰어가는 아이가 이 책의 주인공인데, 이 아이는 자기를 ‘행복한 아이’라고 소개해. 비결은 상상하기래. 허무맹랑한 상상, 엄청 커다란 상상, 자잘한 상상, 희한하고 재미난 상상에 날마다 푹 빠진대. 이 아이는, 어른들이 항상 조용히 하라고 하고, 똑바로 앉으라고, 집중하라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해. 상상은 항상 불쑥 찾아오는데 그게 어떻게 제 마음대로 되겠어.


아이는 상상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가만히 누워 갖가지 모양으로 솟아오르는 이야기를 지켜보고, 크게 소리를 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자기의 이야기를 신이 나서 들려줘. 가끔 외로울 때도 있지만 진정 행복한 아이는 금세 일어나는 법을 안다고, 한 발 두 발 앞으로 나아가는 법도 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그러면서 물어봐.

너는 어떤 아이니? 하고.



나랑 우주가 제일 재미있게 보는 페이지가 바로 이 페이지인데, 행복한 아이가 되는 방법은 엄청 다양하다고 적혀있는 페이지를 양쪽으로 활짝 펼치면 정말 다양한 아이의 모습이 나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아이, 볕 쬐기를 좋아하는 아이, 평화를 꿈꾸는 아이, 낮잠을 좋아하는 아이,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 발 구르기를 좋아하는 아이, 동물과 친구 하는 아이, 힘이 센 아이, 비밀스러운 아이, 산책을 즐기는 아이, 잘 웃는 아이, 자주 딴생각에 빠지는 아이, 별을 따고 싶은 아이, 거인이 되고 싶은 아이 등등. (세보니까 48명의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네.)

우주랑 나는 이 아이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 우주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 우주는 처음엔 잘 모르겠다고 했고, 두 번째, 세 번째 봤을 때는 그림 그리는 아이를 가리키며 자기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고(그때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있었거든.), 얼마 전엔 갑자기 앞구르기를 하면서 자기는 앞구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하더라.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이 말 때문이야.


“찬찬히 너를 들여다봐. 행복의 비결은 네 안에 있어.”


그리고 책의 앞뒤 커버 안 쪽에 작가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짧은 메모 같은 글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이것도 참 좋아. 천천히 답을 찾아봐, 계속 가는 거야. 너는 하나뿐이야. 세상에 너를 드러내. 너만의 리듬을 보여줘. 네 안을 여행해. 겁내지 마. 내가 나로 있는 시간 등등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작가의 이 말들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나는 이 책을 나중에 우주가 혼자서 글을 읽게 되었을 때 찬찬히 다시 봤으면 좋겠어. 결국 행복의 비결을 찾는 건 우주 자신이니까. 이런 메시지들을 통해 우주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힘을 키워갔으면 좋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이건 나의 바람이고, 내 육아의 목표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언니의 육아 목표를 듣고 나서 나의 육아 목표는 뭘까 한참을 생각해봤어. 이게 내 육아 목표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따로 없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정리해 봐도 좋겠다 싶은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더라.




지난번에 언니 만났을 때 언니가 육아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잖아. 나 사실 그때 내색은 하지 않았는데, 정말 놀란 거 알아? 나는 임신했을 때부터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밑줄 그어가며 봤거든. 자연출산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서는 자연출산 관련 책을 논문이라도 쓸 기세로 찾아 읽었고, 출산 관련 책을 다 본 후에는 프랑스 육아법, 덴마크 육아법, 아기 존중 육아법 같은 다양한 육아책을 보고, 심지어 ‘대백과’란 이름이 붙은, 말 그대로 백과사전 같은 두께의 책도 정독했어. 그렇게 공부를 하면 아이를 잘 낳고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던 거지. 근데 임신 기간 내내 열심히 운동하며 준비한 자연출산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아 수술을 했으니 뭐, 육아서로 배운 육아는 말해 뭐하겠어.

지금 그때를 찬찬히 돌아보면 나의 욕망이 보이는 것 같아. 아이를 잘 키워서 ‘잘했다’고 인정받고 싶은, 아이가 주체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잘’하고 싶은 욕망 말이야. 내 욕망만 앞서서 아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세계라는 것도 모르고, 내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아이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 그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야.  

아이가 크면서 계속 확인하게 된 것 중 하나는 본래부터 아이는 자기 안에 아주 확고한,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성정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언니가 이야기한 부분에 아주 격하게 동의해.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고유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회가 원하는 대로 혹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바꾸기보다 아이가 가진 것 그대로를 충분히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하는 것 말이야. 이 그림책의 작가 피터 레이놀즈도 그랬대.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만났던, 자신의 독특한 내면을 인정하고 응원해 준 선생님들 덕분에 지금의 삶이 가능했다고.

음, 그러니까, 내 육아의 목표는 이걸로 해야겠어. 아이라는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런 아이가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게 나는 항상 한 발자국 뒤에 물러나 있기. 아, 근데 써놓고 보니까 너무 어마어마한 것 같다. 맙소사. 나, 이거, 할 수 있을까? 아이랑 하는 산책길에서도 시작은 뒤에 서 있다 결국은 앞장서 걷고 마는데.

그래도 목표가 있으면, 그리고 그걸 잊지만 않는다면, 나도 모르게 앞서갔다가 다시 뒤로 물러날 수 있겠지? 그래, 그럴 거야. 그렇게 믿어야겠어.


그럼 우리 오늘도 힘내 보자고!




2022.8.5.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의 비밀을 찾길 바라며,

다경




 애나는 발레리나


 글, 그림 : 루시아노 로사노

 옮긴이 : 성초림

 ㈜웅진씽크빅 ┃2020


#자아정체성#성향#취향#자아탐색



 너에게만 알려줄게

 -피터 레이놀즈가 전하는 행복의 비밀


 글, 그림 : 피터 레이놀즈

 옮긴이 : 서정민

 문학동네 ┃2017


#자아정체성#나#성향#취향#자아탐색#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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