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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Jul 26. 2022

16. 상상력이 풍부하면 좋을까 나쁠까?

그림책 <부가 집에 오지 못한 12가지 이유>, <엄마를 구출하라!>

다경아,


나는 삶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듯, 죽음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종종 사는 건 자기 합리화의 연속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해. ‘자기 합리화’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려면 스스로 태도를 정하고 그것이 옳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 같거든. 그런데 죽음은 정말이지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시켜야 하는 주제 중 하나 같아. 그림책 <여우 나무>처럼 아름답게든, <에밀, 장례식에 참석하다>처럼 단순하고 가볍게든, 어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뇌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 


나는 죽는 순간이 두려울 뿐이지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어. 사는 건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 이미 내 곁을 떠난 사람들도, 슬프고 아련하지만 어느 하늘에서 편히 쉬고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들을 마음속에서 지우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늘 존재한다고 믿었지. 죽음에 대해서 나름 두려움이 덜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몸이 아프면서 잠깐이나마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느꼈어. 울면서 도와 달라고 말했던 나를 돌이켜보면서 죽음에 초연 해지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생각하게 되더라. 그래도 아이에게 까지 이런 두려움을 전가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먼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진 않겠지만 만약 아이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면 따스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아이의 불안을 안아줄 거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내가 우주랑 친해진 기분이 들 듯이 아마 너도 준호가 많이 익숙해졌겠지? 종종 이야기했지만 준호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질이 있어. 육아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았을 때 준호의 기질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불안과 충동성이 동시에 높아서 까다로운 기질 중에서도 가장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기질이라는 결과를 받았어. 그러니까 불안은 높으면서 모순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내면의 갈등이 많다고 하더라고. 결과를 읽어보니 그간 나를 괴롭혔던 준호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하더라. 한편으로는 준호의 행동을 문제 행동이라고만 생각하고 포용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애들은 다 그런 거’라는 말로 나의 힘듦을 공감받지 못하다가 기질검사 결과지가 공감해주는 것 같아 위로를 받았지. 아무튼, 충동성이라는 말에는 준호의 장점이자 단점이 들어있는데, 난 그게 호기심과 상상력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말하면 무조건 장점 같지! 요즘 사람들은 창의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책도 보고 교구도 사고 전시회도 가고 미술도 하지. 마치 모든 아이들이 창의력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좋아서 밖에서 하는 행동들을 보면 단점이 되곤 한다? 뭐든 참지를 못하고 만지고 그걸 자기 상상에 따라 변형하거든. 어딜 가든 ‘만지면 안 돼요.’라는 소리를 듣고, 눈 떠보면 아이는 사라져 있지. 호기심에 이끌려 방향을 트는 아이를 보며 이리 오라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여기저기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다니는 건 나고 말이야. 그렇다 보니까 밖에 나가면 내가 신경이 곤두서.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어디 가서 민폐를 끼칠까 봐, 아이 단속하기 바쁘지. 근데 리아까지 데리고 나가면 나는… 알지…? 흑흑.


그런데 어느 날 준호가 그런 말을 하더라. 


“나는 말 잘 듣는 아이는 아니잖아.”


잔소리하고 단속하느라 힘들다고 투덜댔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어. 호기심과 상상력이 풍부한데 충동성까지 높아봐. 얼마나 하고 싶은 행동들이 많겠어. 준호가 혼날 때마다 “나도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뇌가 자꾸 시켜.”,라고 말하던 일 들이 생각나면서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싶은 거야. 


“아니야. 준호 말 잘 듣는 편인데? 엄마한테 자주 혼나는 것 같아서 그래?”

“응…”


준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어.


“근데, 나도 좋은 점이 있어?”

“있지. 너는 상상력이 좋아. 상상력이 좋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많잖아. 그래서 가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엄마한테 혼나기도 하지. 그렇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건 좋은 거야. 그런 사람들이 네가 좋아하는 책도 만들 수 있고, 만화도 만들 수 있고, 과학자도 될 수 있거든! 세상에 없는 걸 상상해서 만들어야 하잖아.”


그 뒤로 준호는 자기의 좋은 점은 상상력이 풍부한 거라고 생각해. 스스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자기가 상상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그림을 자랑스레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좀 귀여워. 한 번은 <엄마를 구출하라!>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세계를 구할 인물로 주인공 아이가 선택되거든? 근데 선택된 기준이 무언지 알아? 바로 상상력인 거야! 세상에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어린이이기 때문에 세계를 구할 영웅으로 발탁되었다는 부분을 보면서 준호에게 말했지.


“와, 여기 너 같은 애가 또 있네? 너도 세상을 구할 수 있겠다! 부럽다 준호야.”


준호는 특유의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지만 어딘가 으쓱하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주인공 아이가 상상력을 이용해서 악당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할 때마다 자기는 이 정도의 상상력은 못 할 것 같다고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내 응원을 듣고 싶어 하더라고. 그러면 나는 또 ‘에이 네 상상력이 더 좋아!’라고 너스레를 떨지.


준호는 그래서인지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야. 이 책 말고도 같은 작가의 <아빠의 이상한 퇴근길>도 좋아하는데, 이건 아빠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퇴근이 늦어진 이유를 엄청난 ‘뻥’을 섞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야. 난 이 책을 보면 짠하면서 따스한 감정이 들어. 아빠는 아이스크림 사 들고 일찍 들어간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회사에서 점심시간도 반납하고 눈썹 휘날리며 일을 하는데 눈치 없는 무서운 상사의 횡포(?)와 더 눈치 없는 후배의 투정으로 퇴근시간이 늦어지거든. 물론 아빠의 ‘뻥’에는 더 많은 우여곡절이 있어. 비록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왔지만 아빠는 어른의 삶이 가진 모든 역경과 고난을 상상력을 통해 신나는 모험으로 만들어 감춰버려. 그리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아이들과 잠들어버리지. 


준호가 좋아하는 상상력 가득한 책, 하나만 더 이야기할게! 이 책은 나도 참 좋아하는 책인데 <부가 집에 오지 못한 12가지 이유>야. 2019년에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공모전에서 수상한 책인데 앤서니 브라운 아저씨가 심사평에서 이런 말을 해.


이 그림책은 집에 오지 않는 형 ‘부’를 생각하며 많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동생 ‘루’의 하루를 무섭지만 재미있는 방법으로 그려냈습니다. 깔끔한 형식의 색채를 빈틈없이 사용하여 잘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은 루의 상상력만큼 독창적입니다.


내용은 단순해. 루와 부는 둘도 없이 친한 형제 사이야. 그런데 ‘부’가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에 가지. 학교가 무언지 잘 모르는 ‘루’는 학교에서 온갖 마법을 배운다고 생각해. 그런데 하루 종일 기다려도 형이 집에 오질 않는 거야. ‘루’는 불안해지지. 형이 집에 오는 길에 무서운 괴물이나 마녀를 만나진 않았을까 온갖 상상을 하는데 상상의 내용이나 그림이 무척 기발하고 생생해. 거기다 형을 걱정하는 동생의 마음은 어찌나 귀여운지. 준호는 ‘루’가 상상하는 ‘부’의 위기를 좋아해. 재미있고 조금은 무서운 상상이 넘쳐나거든. 


그런데 둘째 리아는 준호와는 전혀 다른 취향을 가졌어. 리아는 일단 준호만큼 책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상상력이 풍부한 책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해. 보면 둘이 참 다른데, 준호는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혁명가(좋은 말로 혁명가 나쁜 말로 말 안 듣고 고집 센 애)인 반면에 리아는 규칙을 좋아하고 배우는 걸 즐기는 다정한 모범생이야. 준호가 어릴 때 했던 반짝이는 말들이 많은데, 나는 아이라면 다 그런, 그러니까 조금은 엉뚱하고 귀여운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리아를 키우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리아는 준호에 비해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조금 부족하더라고. 책이나 이야기에도 별로 흥미가 없고 정해진 틀 안에서 목표를 완수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지. 그런데 나는 그런 리아에게 억지로 책을 읽히거나 준호처럼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하고 싶진 않아. 창의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난 무조건 대세에 아이를 맞춰 키우는 것보다 아이의 생김새를 잘 이해하고 아이가 좋아하거나 잘하는 부분을 확장시켜주고 싶어. 그래서 준호에게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을 거고, 리아에게는 창의력을 강요하지 않을 거야. 나는 준호가 그 유명한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하는 아이’가 될 거라는 느낌이 있어. 하하. 근데 난 그런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하고 싶지 않아. 결국 공부를 잘하는 능력은 약간의 두뇌 능력과 꾸준할 줄 아는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준호는 꾸준함보다는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새로운 것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힘이 있거든. 나는 그 힘을 키워 줄 거야. 그 힘을 키워주면 그 영역 안에서는 꾸준함도 어느 정도 갖출 거라고 믿어. 리아는 세상이 요구하는 놀라운 창의력은 별로 없지만 규칙 안에서 목표를 완수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니 그런 능력에 집중해주고 싶어. 리아가 꼭 창의력을 키워야 할까? 잘 모르겠어. 아이가 커갈수록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교육 이야기에 귀가 커지기도 하고 그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 생각을 고수하자 다짐하기도 해. 어떨 때는 이렇게 고민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나는 정말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창의력이니 뭐니 할 것 없이 학교 끝나면 보습학원 다니기 바빴는데, 결국 성인이 되어서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들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잖아. 결국 유년 시절에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 그리고 응원이 아닌가 생각하게 돼. 아마 자신을 구성하는 자양분을 찾아 취하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은 결국 아이 자신이 아닐까. 부모는 그저 아이의 필요를 잘 발견하고 보조해주면서 사랑만 가득 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이가 무엇을 배워야 해야 하는가 보다 아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를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흔해 터진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싱겁지?


어쨌든 내가 가진 육아의 목표는 그런 것 같아. 아이가 가진 것 중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아이에게 잘 맞는 것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게 도와주고 마음 편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지지해주는 것. 너는 어때? 



2022. 7. 24.

네 이야기를 기다리며,

민영



글, 그림 : 홍민서

현북스 | 2020년

#형제 #상상 #창의력 #엉뚱







글, 그림 : 김영진

책읽는곰 | 2013년

#영웅 #상상력 #세상을구하라










글, 그림 : 김영진

책읽는곰 | 2018년

#아빠 #상상력 #유쾌 #흥미진진한무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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