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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Oct 30. 2022

20. 아이와 내 취향이 다르다니!

그림책 <꿀벌과 거미를 지켜줘>, <엄마, 우리는 왜 울어요?>

다경아,


나를 사랑해주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 요즘 우울증이니 불안장애니 겪으면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는데, 그중에 나를 사랑해주라는 말을 보았어.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겠더라고. 나는 요즘 그 어떤 것에서도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해. 평소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했던 작은 습관들이 지금은 시큰둥한 것들이 되어버렸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단 음식이나, 밥 대신 과일로 배를 채우는 일,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일이 더 이상 기쁘지 않아. 그렇다면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것이 없는데,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나를 잘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까? 거기서 얻는 기쁨을 꾸준히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좋아하지 않더라도 기분전환에 좋다고 알려진 것들을 억지로라도 해야 할까? 그러기엔 나의 귀찮음과 무기력은 엄청나고 말이야.


아무튼, 약에 의해 약간 멍 해진 나는 취향이 없는 상태가 되었어. 예전엔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힘겨워서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 돼 보니 세상 울적하다. 웃을 일이 없어. 좋아서 펄쩍펄쩍 뛸 일이 없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가 않아. 네가 말하는 작은 것들을 느끼는 힘이 약해진 것 같아.


얼마 전에 싸이월드를 복구했는데 거기서 알림이 하나 온 거야. 뭔지 궁금해서 앱을 열었다가 예전 일기들을 보았어. 나는 참 작은 것에 울고 웃었더라. 당시에 내가 CAKE라는 밴드를 좋아했는데 많이 알려진 밴드가 아니라서 CD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어. 그런데 원하던 앨범은 아니었지만 CAKE의 앨범 중 하나를 어느 가게에서 찾았나 봐. 이거라도 어디냐며 기뻐하던 일기가 있더라. 지금의 나라면 일단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CD 한 장에 일기까지 쓸 정도로 신나 하지도 않겠지. 그런 작은 기쁨을 보면서 준호가 떠올랐어. 준호는 요즘 그림책을 보지 않아. 어린이가 되어가면서 내가 선택한 그림책을 같이 보는 것이 쉽지 않더라.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시리즈를 사달라고 요구하는 명확한 취향을 가진 자가 되어 가고 있거든! 한편으로는 내가 보기에 흥미로워 보이는 그림책을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한 편으로는 자기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그러니까 흔한 말로 덕질을 시작하는 아이가 진정한 하나의 인격체로 보이기 시작했어.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나는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책을 통해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치도 있거든.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야. 이제는 책을 통해 그것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어. 내가 고른 책은 표지만 보고도 고개를 젓고 자신이 고른 책을 읽어 달라고 하지. 마치, 우리 엄마가 큰돈 들여 세계문학전집을 샀는데 읽는 둥 마는 둥 하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말이야. 당시의 나는 진취적인 책들을 선호했어. 마음 가는 대로 살라던지,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하라던지 하는 책들 말이야.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귀여운 야망들을 키워갔지. 책 속의 사람들처럼 노력하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엄마는 내가 고전 문학을 읽으며 교양을 쌓길 원했지만 내게 그런 책들은 고리타분하기만 했어. 결국 나는 세계의 고전을 거의 읽지 않은 어른으로 자랐지. 그리고 이따금 부끄러운 상황들이 생겼어. 엄마 말대로 그 고전들을 읽었다면, 사람들이 톨스토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야. 


내가 준호와 나누고 싶어서 골랐으나 실패한 책들을 보여줄까?




남편과 나는 지역 양봉업자들을 후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기후변화와 농약 사용 등으로 인해서 사라지는 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친환경 꿀을 만드는 지역 양봉업자들에게 일정 후원금을 보내고 그 대가로 꿀을 받고 있어. 우리는 준호가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 후원회에서 꿀을 보내줄 때 병에 벌들의 친구 00이라고 써주거든. 그래서 우리는 준호와 리아의 이름을 넣어 달라고 신청하고 꿀이 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보여줘. 너희가 지켜준 벌들이 이 꿀을 선물로 준거라고. 왜 벌들을 지켜야 하는지 설명해주면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나중에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이 책도 그런 의미로 골랐는데, 준호가 한 번 보더니 다시는 안 보더라. 아마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벌과 거미가 왜 해롭지 않고 중요한 곤충인지 설명해주는 책은 심심했던 모양이야. 


또 다른 책은 <엄마, 우리는 왜 울어요?>라는 책이야.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준호가 잘 우는 아이인 데다, 어디선가 ‘기뻐서 눈물이 나온다’는 표현을 보고 슬프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나오는 거냐고 아리송해하며 물었거든. 아이는 기분이 나쁠 때만 눈물이 나오는 경험을 했는데 기쁠 때 눈물이 나온다니까 이해가 안 가는 거지. 나는 아이와 우는 것에 대해서 책을 보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 단순히 울지 말고 말을 해야 네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 말고 울음이 나올 때의 다양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 이 책은 눈물이 나오는 다양한 이유에 대해서 시적인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책인데 나는 너무 좋았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고 때로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잖아. 어른인 나도 그런데 아이는 오죽하겠어.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다양한 감정을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설명해줘. 난 그게 좋더라. 준호가 자기가 느끼기는 하는데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이해하길 바랬는데 아이에게는 조금 어려웠나 봐. 


또 어떤 때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답을 찾기 위해서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해.


나는 이 부분도 좋았어. 준호가 종종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거든. 자연스러운 거라고,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은 것을 보고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먹어보자고 하지.


눈물은 우리가 성장하도록 도와준단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천천히 우리에게 물을 주는 거야.
울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바위로 변하게 될 거야.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우리는 그것을 나쁘다고만 하지. 그걸 꼭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너를 성장하게 해 줄 거라고, 그것을 느끼기에 우리는 사람인 거라는 이야기는 잘해주지 않는 것 같아.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 수는 없잖아. 그런 거라면 나는 아이가 그것을 잘 다루고 승화시키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고 희망했어. 내가 그것에 실패했으니까, 나는 부정적 감정에 당하고 말았으니까, 아이만은 그렇지 않길 바랬지. 어쨌든 이 책은 아이에게 거절당했어. 하지만 난 좋아!

어쩌면 난 준호에게 나의 취향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환경 이야기를 하고, 시적인 표현이 가득한 책들을 읽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내가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점점 미미해진다는 것을 느껴. 아이는 학교의 삶, 자기가 만든 사회에서의 경험, 그리고 기본적으로 가진 기질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들을 선택하지. 이따금 아이의 취향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어. 게임이나 너무 비꼬는 유머가 가득한 만화책을 좋아할 때 말이야. 근데 재미있는 건 나도 반어적이거나 냉소적인 유머를 좋아하거든? 근데 6살 내 아들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것만 좋아했음 하는 이 모순적인 마음을 어찌하면 좋으니? 


그렇지만 마음만 그렇게 가지고, 책은 아이에게 고르게 하는 편이야.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 시리즈가 있는데, 지난번에 소개한 에밀보다도 더 시니컬하거든? 내가 봐도 기가 막히게 웃기긴 하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해. 벌써부터 이렇게 만화책을 많이 봐도 될까. 이건 6살 한테는 좀 너무 냉소적인 거 아닌가?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순수하고 영롱한 아이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는 준호의 모습을 보며 아쉬워하는 거겠지. 욕설이 난무하는 미국 랩 음악을 듣고 힙합 바지로 거리를 쓸고 다니는 앳된 나를 보며 우리 엄마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아직은 만 6살이니까 내가 책 선정에 좀 개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도 취향을 무시하고 무조건 안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조금씩 들이밀어보긴 하는데, 늘 거절이다! 넌 어떻게 생각해? 내가 의무적으로 한 번은 네가 좋아하는 책, 한 번은 내가 고른 책. 이런 식을 규칙을 정해서 읽어줘야 할까? 아니면 철저하게 아이의 취향을 고려해줘야 할까? 


나만의 아기 같던 아이가, 나만 필요하다고 매달리던 아이가, 이제 내 게서 점점 멀어져. 옆에서 종알거리며 걷던 아이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자라는 아이가 자랑스러워. 그러면서도 내가 잘 뒷받침하고 있는 건지 늘 불안하기도 하고.


여긴 날씨가 추워졌어. 난 벌써 겨울 잠바를 꺼내 입고 다녀. 하지만 집 안에서 보는 바깥은 따스해 보인다. 노란 햇살이 내리쬐고 있거든. 한국의 가을은 더 아름답겠지?


편지가 늦어서 미안해.

용기가 필요했어. 

그리고 지금은 조금씩 용기가 나는 것 같아.


이런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늘 고마운 마음이야.


건강해!


2022.10.3

민영. 




글, 그림 : 에밀리 바스트

옮긴이 : 박나리


풀빛 | 2020년


#꿀벌 #거미 #환경










글 : 프란 핀타데라

그림 : 아나 센데르


그린북 | 2020년


#감정 #눈물 #우는것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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