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에는 방충망이 있는 집이 드물다. 최근 모기가 부쩍 기승을 부려 방충망을 직접 다는 가정이 한둘씩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집에는 방충망이 없다. 더불어 에어컨이 있는 가정도 드물다. 더운 여름이면 방충망도 없는 창문을 활짝 열어 더위를 식히는데, 그러다 보면 자주 보는 손님이 파리와 나방이다.
큰아이가 만 두 살 때의 일이다. 집에 나방 한 마리가 들어왔다. 프랑스에서는 나방도 나비도 모두 papillon (빠삐용)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나방도 나비도 모두 나비였다.
아이가 “오! 나비다!”하고 즐거워하는 순간, 우리 집 고양이 양말이도 (프랑스 이름이 chaussette 쇼세트인데 한국어로 ‘양말’이라는 뜻이라 나는 양말이라고 부른다) 나방을 발견했다. 오랜만의 사냥감 발견에 신이 난 양말이는 곧장 몸을 날려 나방을 잡았다. 그리고는 푸덕거리는 나방을 양 발 안에 넣고 장난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양말이의 발톱에 나방은 점점 힘을 잃어갔지만 양말이에게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 장면을 본 아이는 당황했다. 처음 보는 이 광경이 무서웠는지 “나방! 쇼세트! 농 non(안돼)!”을외치며 내게 무언가 할 것을 종용했다.
“양말이는 지금 사냥을 하는 거야. 고양이들은 원래 저렇게 해. 그냥 놔둬야 해.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내게도 마음 아픈 장면이었지만 달리 보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갈등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이 장면을 견딜 수 없다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다른 걸 하고 놀았는데 어김없이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나비?
사실 나방은 양말이가 먹어버렸다. 아주 짧은 시간 나는 망설였다. 진실을 말해줄까. 아니면 날아갔다고 거짓말을 할까. 그리고 나의 본능은 결국 진실을 택했다.
“양말이가 나비 먹었어.”
아이는 우아아아앙 오열했다.
그래. 현실은 동화책처럼 예쁘기만 한 건 아니지. 잡아먹으려 하고, 잡아먹히지 않으려 하고. 그러나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2.
“엄마 사람은 왜 늙어? 꼭 늙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네 살 큰아이가 물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어. 양말도 신다 보면은 낡아서 구멍이 나고 결국엔 못 신게 되는 날이 오잖아. 사람 몸도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그러다 못 쓰게 되고. 왜? 너는 늙기 싫어?”
“응. 나는 늙기 싫어.”
“왜?”
“늙으면 하늘나라 가야 하잖아.”
“하늘나라 가는 게 왜 싫은데?”
“엄마, 아빠랑 떨어져야 하니까. 리아도.”
“괜찮아. 그건 아주아주 나중 일이야.”
“얼마나 나중?”
“모르겠어. 그런데 왜 하늘나라 가는 생각을 해?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지금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즐겁게 지낼 궁리를 하자.”
아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핼러윈 시즌이었는데 죽음을 주제로 전시를 꾸렸다는 박물관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엄마 저기 왜 해골이 있어?”
큰아이에게 해골은 인간의 뼈가 아니라 핼러윈 파티에 나오는 괴물 중 하나였다.
“저거는 박물관 포스터인데 거기 가면 저런 작품을 볼 수 있대.”
“해골이 왜 박물관에 있어?”
나는 고민했다.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줄지 아니면 그저 핼러윈이라 박물관에도 해골이 오나 보다,라고 너스레를 떨지. 그리고 나는 사실을 택했다.
“해골은 원래 사람의 뼈야. 네 몸속에 엄청 많은 뼈가 있는 거 알고 있지? 그 뼈들인데 그걸 소재로 한 작품들이 박물관에 있대.”
“그런데 왜 뼈만 있어?”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히는데,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면 살은 땅이랑 섞이고 뼈는 남거든.”
***
어느 날은 함께 약국에 갔다. 주변의 어르신들을 본 아이가 물었다.
“엄마, 모든 노인은 다 죽어?”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아이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남편에게 들려주었는데, 내가 너무 솔직하게 대답해서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줬을 거라는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다음에도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하면 본인에게 맡기라고 신신당부했다.
“그건 이따가 아빠한테 물어보자.”
아이는 지금 당장 알고 싶다며 사람 많은 곳에서 짜증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내게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속 귀도처럼 어두운 주제를 가지고 귀엽고 즐거운 상상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었다. 모든 노인은 다 죽지,라는 대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데 어쩌지 하는 순간, 죽는 노인도 있고 안 죽는 노인도 있어,라는 애매하고 말도 안 되는 답을 하게 되었다.
3.
세 살 작은 아이와 <겨울왕국>을 보고 있었다. 엘사와 안나의 부모님이 탄 배가 바다에 침몰하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 후, 엘사는 대관식을 하게 되는데 작은 아이는 두 사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
“어… 배에 탔다가 사고가 났어.”
나는 정확한 묘사를 피했다. 사고가 났다는 말은 부모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작은 아이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디 갔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가 가지 않을 거라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엄마, 아빠는 바닷속에 들어갔어.”
‘죽었다’라고 말하기 싫었던 나는 간접적으로 죽음을 표현했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바닷속에 갔어? 그다음엔?”
인간이 물속에 오래 있으면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작은 아이는 계속해서 물었다. 피할 수 없다고 느낀 나는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사람이 물속에 오래 있으면 숨을 못 쉬어서 하늘나라에 가야 해. 엄마 아빠는 배에 탔다가 사고가 나서 물속에 빠졌어.”
“그래서 오래 있었어?”
“응. 오래 있었어.”
큰아이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덜 민감한 작은 아이는 그러니까 수영장에서는 얼굴을 이렇게 잠깐만 넣는 거야,라고 말하며 짧은 상체를 잽싸게 숙여 보이곤 자리를 고쳐 앉았다.
***
아이들은 내게 죽음을 묻기도 하고, 아기가 생기는 과정을 묻기도 하며, 아기가 어디로 나오는지도 묻는다. 자신을 때리는 친구를 때려도 되는지 묻기도 하고, 전쟁이 무어냐고 묻기도 한다. 식탁에 오르는 생선이나 달걀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묻기도 하고 동화책에서 보았던, 귀여운 병아리가 나오는 달걀이 본인이 먹는 달걀과 같은 건지, 색칠공부 시간에 정성 들여 칠했던 물고기가 식탁에 있던 물고기와 같은 건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영민하고 성숙한 존재들이란 것을 깨닫고 배운다. 아이에게 대답을 하면서, 아니 아이에게 세상의 뒷면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면서 숨기고 미화하고 싶지 많은 않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뒷면도 삶의 일부이고 적어도 그걸 궁금해하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알 준비가 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