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코로나가 한창 기승일 때 나는 무리를 해서 아이들과 한국에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네 살, 한 살 어린아이들에게 코를 쑤욱 찌르는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하고 16시간가량 마스크를 쓰고 비행기를 타게 했다. 비행기에서도 멀미하는 아이들은 토하고 잠도 못 잔 퀭한 얼굴로 보건소로 직행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고 2주간 아파트 안에 갇혀 답답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한참 뛰어놀 아이들이 뛰지도 못하는 아파트에서 2주를 버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종교도 없던 큰아이는 거실에 있던 성모 마리아상을 보더니 무어냐고 물었다. 그리고 내 대답을 듣더니 기도를 시작했다.
“한국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우리가 외국에서 왔기 때문에 2주간 자가격리해야 한다고 이해한 큰아이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가 위독하시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2020년 가을 즈음 영상통화를 하면서 한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너도 미치겠고 나도 미치겠는 격리가 끝나고 친정 부모님이 아파트로 들어오셨다. 저녁을 준비하던 친정엄마가 작은 이모 전화를 받았다.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제야 친정엄마가 말했다. 외할머니가 나와 아이들이 도착하기 하루 전에 쓰러지셨는데 지금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고.
친정엄마는 4남매 중 둘째다. 큰 이모는 수녀가 되어 집안 대소사에 참여하기 어려웠고 엄마가 큰 이모를 대신해 맏딸 역할을 했다. 나와 아이들을 돌보느라 친정엄마가 처리하지 못하는 외할머니 병원 일을 작은 이모가 대신해서 해주고 계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이야기하던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심정이 어떠할까.
엄마는 그 전화를 받고도 나와 아이들에게 비빔국수를 푸짐하게 해 주셨다.
그렇게 슬픔 속에서도 담담하게, 때로는 만남의 작은 기쁨을 누리기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작은 이모가 점심 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가보니 만나 뵙기 쉽지 않은 큰 이모도 와계셨다. 작은 이모와 닮은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을 먹으며 이 얘기 저 얘기하고 있었는데 큰 이모가 내게 물었다.
“작은 이모 집 괜찮지?”
작은 이모는 이제 막 이사를 하셨다.
“네. 좋아요. 근데 아파트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아파트야 뭐 다 똑같으니까.... 이모가 집을 예쁘게 잘 꾸미신 것 같아요.”
“맞아. 얘가 어려서부터 미적 감각이 있었어. 미술을 해도 잘했을 것 같은데.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못 해줬네.”
친정엄마는 그러게,라고 맞장구를 쳤다. 큰 이모는 말을 이었다.
“늬 엄마는 옷을 잘 입었어.”
“그래요? 그런데 지금은 왜 안 그래, 엄마.”
“지금은 교복 하나 사서 입고 다니지 뭐. 근데 너희 할머니가 맨날 그랬다? 젊었을 때 잘 좀 꾸미고 다니라고.”
엄마는 대답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아니 그 감각 다 어디 두고 지금은 교복 신세야.’라고 다정한 핀잔을 해주었다.
“애 낳고선 편한 게 최고였지 뭐.”
엄마는 단순히 편한 게 최고라고 말했지만 아마 더 많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유모차 살 돈이 없어서 이십 개월, 갓난아기 둘을 유모차도 없이 장 보러 데리고 다닌 엄마가 자신의 꾸밈에 돈을 썼을 리 없었다.
“나는 뭘 잘했지?”
큰 이모가 말했다.
“음… 나는 춤을 잘 췄지.”
“맞아. 언니가 춤 선이 이뻤지.”
수녀복을 입은 이모가 춤을 이야기하니 이상하게 신선했다. 나는 젊은 이모가 사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나는 걸음이 느려서 맨 뒤에서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란히 걷고 있는 나이 든 세 자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파릇파릇한 내 어린 자식들 뒷모습에만 눈길을 주다가 나이 든 세 자매의 뒷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지나가는 세월을, 그리고 늙음을 생각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했지 늙음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흔이 되어서야 어슴푸레 늙음이 만져지는 것 같다. 쉰이 되면 또 어떨까.
세 자매의 뒷모습에는 각자의 서로 다른 삶과 지나온 세월이 느껴지면서도 그 안에서의 공통된 연대도 느껴졌다.
이전의 나는 성취에 관심이 많았다면 요즘의 나는 잘 늙는 것에 관심이 많다. 자연스럽고 마음이 유연했으면 좋겠다. 배우는데 부지런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적게 말하고 잘 들으며 꾸준히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베풀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조금 있으면 좋겠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