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주말에만 만나는 사람.

by 몽아무르


J'ai deja envie de te voir.


그는 나와 만난지 한달 정도 되었을때 '벌써 보고싶다.'라는 말을 했다.

아침에 나를 집에 데려다주자 마자 보낸 문자였다.

물론 당시 우리가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나의 두번째 '외국인' 데이트 상대였고,

나는 아직 관계 정의 없이 손잡고 뽀뽀하고 애정표현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연애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우리는 관계를 정확하게 정의한 후에 모든 것을 진행하기 때문에,

서양식의 연애를 하게되면 괜히 헤픈 사람, 혹은 이렇게 즐기다 마는거 아냐 하는 걱정을 하게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같이 뽀뽀하고 손잡았는데, 이러다 끝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은 논리가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손해'가 아닌가?

유난히 여성의 육체 순결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우리기에,

당연히 여성을 피해자로 생각하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결국 육체를 나누기로 한 것은 내 선택 아닌가. 그것은 누구의 손해도 아니다.


어쨌든, 나는 이것을 연애라고 정의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누군가와 데이트 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헤어진지 삼십분도 되지 않아 보내온 문자, '벌써 보고싶다.'는 내게 약간의 안도감을 주었다.


사귄지 한참이 지났을때, 우리는 프랑스의 Bisou (비주)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더랬다.

이곳에 산지 몇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비주 문화였다.

만나는 사람마나 양볼을 맞대고, 심지어 처음 봐도 맞대는 비주.

한국에서는 한번에 몰아 허리를 숙여 인사해도 되었는데,

일일이 사람들 찾아다니며 양볼을 대려니, 어색해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내 심경을 이야기하는데,


그 : 내가 너 데리러 오면, 너는 항상 내게 비주를 해서,

'아, 얘는 진지한 만남을 원한다기 보다는 나랑 그냥 가볍게 주말 보내려고 만나는 거구나.'생각했어.

나 : 왜?

그 : 데이트하는 사이면,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하니까.


사실 그랬다. 초반에 그에게 비주를 하며 살짝 고민 했더랬다.

이미 뽀뽀하고 할거 다 한 사이인데 비주를 해야할까 가볍게 입술에 뽀뽀를 해야할까.

하지만 그는 절대로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고, 내가 비주하면 그대로 비주로 받아주었다.


결국 어느날 나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그의 입술에 뽀뽀하며 인사했다.

뭐든 그렇다.

처음이 어렵지, 나중은...


세번째 데이트 이후로, 그는 주말마다 만날 것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내 스케줄에 따라 징검다리 식으로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순간 부터 짐을 싸와서 자고갈 것을 부탁했다.

나도 어느샌가 그의 욕실에 내 칫솔을 두기 시작했다.


관계가 정의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데이트는 어렵다.

내가 얼마만큼 애정표현을 해야 적절한지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우리집에서 영화볼래?' 라는 제안에

이미 자고 올 것을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갈아입을 옷이나 세면도구를 챙겨가지 못했던 것은

'자고 갈래?'라는 말을 해온것이 아니라서 자고갈 준비를 하면 오버하는 거 이닌가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듯 둘 만의 습관이 생기는 것 같다.


관계가 정의 되지 않은 데이트에서,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데이트 몇번 하다 말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굳이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저렇게 서서히 애정의 말들을 전하고

둘만의 습관, 패턴을 만들려고 하는 모습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첫번째 외국인 데이트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같이 있을때는 잘해줬지만 떨어져있을때는 안부를 묻는다거나 내게 감정적으로 조금씩 더 다가오려고 하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같이 있을때 잘해주는 그를 보며,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떨어져있을때는 감감 무소식인 그를 보며, '아닌가.'하고 헷갈려했다.


지난 연애사들을 돌아보며 얻은 교훈은

헛갈리게 하는 남자, 나에게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는 내게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벌써 보고 싶다.' 라는 문자를 보내온게 1월이지만

나의 2월 일기에는,

'누군가 내 세계에 들어오는 것도 겁나고

그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도 생긴다.'

라고 쓰여있다.


유학 온지 3년이 지났고,

처음 유학 왔을때의 목표의식이 많이 흐려진 상태였으며,

금전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주변 친구들은 결혼하고 아기 낳고 경제기반도 다지고 커리어도 쌓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7평짜리 학생 레지던스에서 혼자 외로이 있었다.

나는 굉장히 조급했고 당황해있었다.

혼자 도태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그를 사랑한다고 느낀다.

그때보다 나아진 상황은 없지만, (아니 더 보잘것 없지만)

그때보다는 행복하다.


상대의 화려함에 속지 말고

수수하더라도 거기서 진심을 보는 눈이 중요한 것 같다.


물론,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기란 참 쉽지 않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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