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족이라는 것.

by 몽아무르


그 : 엄마가 우리를 초대했어.

나 : 우리?

그 : 응. '우리'.


나는 순간 겁에 질렸다. 벌써? 만난지 3개월이고 아직 '내 여자친구'라고 소개 받아본 적 없는 애매한 사이에 엄마를 만나러 가자니.

뭐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몇 년을 만나도 상대방의 부모를 만나는 자리는 어려운 법인데,

이제 갓 만나기 시작한 사이에 부모님과의 만남이라니.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응' 이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 : 가기 싫으면 안가도 돼. 내가 적당히 핑계 댈게.


부담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어른의 초대를 거절하기도 마음이 그랬다.

평소 짧은 바지를 즐겨입던 나는 이날은 유난히 신경써서 무릎길이의 원피스를 입었더랬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는 유머러스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게다가 외국인인 내게 전혀 거리낌 없이 다정히 대해주셨다.


그의 어머니는 그와 비주를 하면서 꼭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마치 다섯살 아들 대하듯 본인보다 더 키가 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길에 사랑을 가득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를 꼭 끌어안고 힘껏 뽀뽀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무뚝뚝한 딸에다 우리 식구들은 서로 만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다정함이 더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 어색했다.

뭔가 할 거리를 찾아야했다.

집안을 구경하다가 선반 위에 놓인 가족들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잘 생긴 남자 소개시켜줄까?"

"하하. 누군데요?"

"내가 만든 애지 !"



밥을 먹으면서 그의 어머니는 내게 이것저것 물어봐주셨다.

나 역시도 뭔가 대화를 이끌고 싶었지만

짧은 불어. 긴장 덕에 생각나는 주제는 없었다.


게다가 내 불어 발음을 못 알아 들으실때의 부끄러움이란. 하하하.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누나 가족이 들이닥쳤다.

남편, 누나, 아이 둘.

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얼어붙었다.

비주를 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


당시 그는 누군가를 소개시켜주는데 재능이 없었다.

그의 지인이나 가족을 만날때마다 나는 그들을 처음보고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은 내 누나야.' 라는 식의 소개를 하는 법이 없었다.

본인이 비주하고 내가 비주하면 그걸로 끝.


나는 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멍하니 섬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서있어야 했다.

매번 이런일이 반복되었고, 언젠가 한번 크게 빈정이 상해 말한 적이 있더랬다.

뭐,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편해진 사이는 아니었기에 그냥 누군지도 모르는,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그렇게 비주를 나누었다.


그는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조카들도 그를 잘 따른다.

아이들의 성화에 그는 함께 보드게임을 했고

나는 중간에 끼기 싫어서 그의 어머니와 티비를 보았다.

하지만 한국 티비 마냥 재밌을리 없는 프랑스 티비를 보며,

지루함에 졸고 말았다.

꾸벅꾸벅 졸고있는 나를 보며 그의 어머니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심심해?"

"아. 아니요. (사실 심심했다.) 밥 먹은 후라 졸려서 그랬나봐요."


하하하.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럼 자.' 하셨다.

한국인인 내게는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처음간 부모님 집에서 낮잠을 자다니.

처음 와서 어색했을 나를 엄마 옆에 내팽개치고 조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그가 미웠다.


'배려 없는 인간 !'


게임은 정말 길었다.

그는 중간에 내게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토라진 후였다.

되었다고 하고, 내 걱정에 몇 마디 건네시는 그의 어머니의 질문에 어렵게 대답했다.

좀 더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싶었지만

삐뚤어진 마음, 되지 않는 불어, 피곤함이 몰려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잠이나 깨야지. 하는 마음으로 꼬마 숙녀의 안내를 받아 화장실에 갔다가 손을 닦으러 욕실에 갔다. (프랑스는 보통 용변을 보는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분리 되어 있다.)


손 닦고 거을을 보는데 그가 들어왔다.


그 : 심심해?

나 : 응.


사실 나는 '응' 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배려차원에서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의 본능은 이성보다 빨랐다.


그 : 집에 갈래?

나 : 아니 괜찮아.

그 : 그러게 보드게임 같이 하지.

나 :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나 진짜 괜찮아. 근데 너 여기 왜 왔어? 화장실 갈거야?


나는 그가 화장실 가려고 왔다가 나를 보러 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그와 같이 지내면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아졌다.

보통 그는 지인들과 이야기하느라 바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바쁘다.

그럼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을 해보았다.


나는 보통 가구마냥 앉아서 사람들을 본다.

그러면 그는 내가 심심할까봐 신경을 쓴다.


그가 나를 보살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의 지인에게 말을 걸고 그 공동체에 들어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 할 수도 있는건데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된다.

한국에서는 어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말도 잘 걸고 대화도 잘 이어나가는데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그게 안된다.

아무래도 언어때문에 얼어붙어서, 그들이 나를 바보처럼 볼까봐, 두려워서겠지.

때로는 좀 우스워지면 어떠랴, 생각해본다.

내가 서투르게 말한다고해도 당연한거 아닌가. 나는 외국인인데.

어째서 외국인인 내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어하는건지.

그게 안되면 속상한 건지 알 수 가 없다.

너무 높은 기준을 삼고 그게 안되면 나를 질타하는 행위는 좋지 않다.

작은 목표를 삼고 그것을 성취하면 기뻐하고 또 작은 목표를 삼고 그것을 성취하고.

그렇게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물었다.


나 : 너는 보통 주말을 이렇게 가족들 하고 보내?

그 : 아니. 근데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가족들이랑 보내기도 해.

나 : 응.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는 거 좋은 거 같아.

그 : 응. 좋아.

나 : 나도 우리 엄마 생각 많이 나더라. 엄마 보고싶어.

그 : 우리 가족 빌려줄께.

나 : 안 똑같아 !

그 : 그, 그렇지.


그러면서 그는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그는 내가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안다.

그러면 그저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한동안 그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괴로운 적이 많았다.

화목한 그의 가족을 보며, 나는 왜 '나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이 나라에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것이 최고 아닌가.


지금은 시간이 조금 흘렀고 그의 가족도 나의 가족도 사랑하는 법을 익혔다.

그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은 멀리 있는 가족이 너무 보고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거라고 믿는다.


이제는 전에는 하지도 않던,

할말도 없이 괜시리 별거 아닌 사진 보내기.도 잘 한다.


'엄마, 오늘은 불고기 먹었어요.' 하면서 불고기 사진 보내면,

엄마는 답이 없다.


하하하. 괜찮다. 답이 없다고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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