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 그러니까 나, 나라는 인간이 엄마라니요. 엄마가 되었다니요.
이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일단,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참 느린 사람이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에 품었던 생각을 실현하는데도 남들보다 시간이 걸린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도 남들보다 훠어얼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요리를 할 때도 요리법에는 준비 시간 20분이라고 써있을지언정 나는 40분을 썰고 닦고 하고 있다.
한참 친구들이랑 누가 더 우울한가 내기하던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성공기를 담은 자기개발서가 많은데 나는 어물쩡어물쩡 이도저도 아니게 사는 나의 이야기를 담은, "이렇게 살면 안되요." 를 써보면 어떨까. 열심히 살고 그래서 잘 살게 되는 사람들 이야기는 너무 질리잖아.
나는 중고등학교 시험기간 내내 밤을 새며 공부했다. 오죽하면 엄마가 이제 제발 잠 좀 자라며 책상 옆에 이불을 깔아줄 정도였다. 누가 보면 너무 열심히 해서 전교 상위권은 되는 줄 알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느린 머리니까 시동 슬슬 걸고 열심히 달리는데 시간이 걸리다보니 밤을 새서 그 성적을 유지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영화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행동을 취한건,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입 시험을 준비 한 뒤인 25살 때였다. 남들 대학 졸업하는 25살에 나는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 중학생 때부터 생각했던 일을 서서히 시작했다.
몇년동안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도망치듯 유학을 결심하고 무작정 프랑스로 날아갔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원하는 어학 성적을 바로 딸 수가 없었다. 왜냐고? 왜긴. 나는 느리니까. 어학 3년 차에 드디어 대학원에 갈수 있는 어학 성적을 딴다. 것도 50점 받으면 통과인데 50.50점을 받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프랑스어는 하나도 안들리고 이해도 안가는데, 숙제는 써서 내야하고, 선생님 질문에 대답해야해서 엄청나게 마음고생을 했다. 나의 유리가슴은 손 대면 바스러지는 낙엽 가슴이 되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으려고 수업을 녹음하고 방과후에 그걸 다시 들으면서 용을 썼다. 대학원은 본래 2년 과정인데 역시나 느려터진 나는 4년만에 학교를 졸업한다. 각 학년마다 논문을 써야 과정이 이수되는데 일학년은 지금 결혼한 사람과 연애하느라, 이학년은 첫아이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느라 오래 걸리고 말았다. 아직도 기억난다. 임신하니 잠이 쏟아지는데 것도 모르고 수업시간에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졸있던 그 때. 그 때는 임신하면 그렇게 졸린줄도 모르고 공부도 못하는게 잠만 잔다고 스스로를 얼마나 탓했던지.
나는 또 느리기도 느린데 예민해서 불평불만도 엄청 많다. 우울해하는것도 얼마나 잘하는지. 내 전문이다.
이렇게 찌질하게, 그리고 꾸역꾸역 남들하는 것보다 오래는 걸렸어도 어쨌든 끝은 보았다. 그거 하나는 괜찮지 않나싶다.
막연하게 책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지 몇 년이 지났다. 세상에는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느려도, 잘 못해도, 타고난 재능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사람이 좀 어중간해도 어쨌든 끝은 봤잖아. 이번에도 뭔가 끝을 볼 순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투덜대면서 꾸물럭대다가 도착지점에는 어쨌든 도착하는게 너잖아. 그게 결과가 눈이 부시든 부시지않든 이도저도 아니든 아무튼 도착하는게 너잖아.
책을 써서 유명해지고 돈을 벌고 싶다기 보다는 (그래도 돈은 좀 벌었음 좋겠다. 한국갈 비행기표 사게) 늘 그랬듯 끝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방법은 ?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마음이 그렇다. 때가 왔다.
그런데 이러다 또 흐지부지되면...? 그럼 뭐. 내 느낌이 틀렸던거지 뭐. 아직 몇 년 더 꾸물거리면 되는거야.
이 글들은 안그래도 굼벵이 같은 내가,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멈춰버린 것 같은 나의 시간을 위해 쓴 글들이다. 아이들의 엄마이자, 나, 나라는 인간으로서 천천히 나아가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다. 꾸물거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