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한국어를 말하며 사는 아이.
주노의 두살
해리포터의 번개 모양 상처를 떠올리게하는 주노의 수술자국. 나도 같은 것이 있는지라 그것이 마음에 어떤 바람이나 소용돌이를 가져올지 잘 안다. 그러니까 둘이 더더 으쌰으쌰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어디서든 주노랑은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시댁에 가도 혼자 꿋꿋하게 한국어하고, 집에서 님이랑 같이 있어도 꿋꿋하게 한국어로 이야기하고선 필요한 경우 님에게 프랑스어로 다시 이야기해준다.
어제는 놀이터에서 주노랑 한국어로 대화하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즈음 되어보이는 아이 둘이서 내 앞에서 수군대며 키득댔다. 내가 “왜 웃어?” 했더니 둘이 도망가 버린다. 숨어서 나랑 주노를 계속 힐끔거리다 다시 다가와서 쑥떡, 키득. 밖에서 주노와 한국어로 대화하면 아이들 반응이 워낙 다양한데, 이미 많이 겪은지라 어느 정도 반응의 성질을 구분해내는데 익숙하다.
이 아이들은 한국어가 신기해서가 아니라 다름을 놀리고 조롱하고 싶어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아시아인만 보면 중국인 운운하며 놀리는거야 종종 있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보는 것도, 참 한심하고 무지하기는 하다. 어쨌든 아이들이 나와 주노를 보며 수군거리고 키득거렸지만 난 한국어를 멈추지 않았다. 그건 말하자면 나와 주노의 존재를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런 나의 고집으로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섞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아이들은 주노랑 놀고 싶어하지 않았고 놀리고 싶어했다. 주노는 내가 한국말로 말하면 본인도 한국말로 말한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한국어를 해야했을까? 프랑스어로 바꾸고 주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줘야했을까?
나는 앞으로 주노가 겪을 많은 일들을 생각했다. 주노는 외모에서 다른 점이 많다. 동양인의 모습, 인중의 상처, 내려앉은 가슴뼈. 다수와 다른 존재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배척하고 싶어하는 인간 사회에서 다른 모습을 하고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는 인중이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한 가정에서 배척되었다. 하지만 결국 나의 다름을 받아들여준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아니 그들은 나의 다름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인정하거나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내가 여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작은 체구, 긴머리와 같이 굳이 고려할 필요도 없는 내 일부 중 하나였다.
언젠가 주노가 자신의 다름으로 상처를 받는다면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너의 다름을 치부라고 생각하거나 별 거 아닌 그것이 너의 존재를 깎아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상종하면서 너의 정신을 갉아먹지 말아라. 그런 인간들은 그런 인간들끼리 서로 판단하고 재며 살라고 해. 너의 다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너라는 인간을 보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판단하지 않고 사는 것 만으로도 참 바쁜게 인생이니까.
아이가 힘든 마음이 생길때 함께 이야기 하고 싶은 엄마가 되고 싶다. 잘 들어주고 응원해줘야지. 그리고, 믿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