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아이를 키우며 외로울 때.

by 몽아무르


요즘 뭐든 구하기위해 변신과 출동을 일삼느라 바쁘신 분의 악당을 잡는 표정. 덕분에 나도 여럿 구조하고 있다.
하지만 난 이 얼굴이 더 좋다구.



두살의 주노.


어느날 주노가 빠빠투이! 하면서 깔깔거리길래 어린이집에서 유행하는 장난인가 싶었다. 마치 아이들이 똥이나 방귀가 들어간 말들을 외치며 재밌어 하듯 그런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우연히 만화를 보여주다가 그것이 빠트 빠트후이 Pat’ patrouille (퍼피 구조대) 라는 만화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주노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아이들이 외치는 말을 들리는 그대로 따라했기 때문에 빠빠투이가 되고 것이다. 나는 프랑스의 아이들 문화를 모른다. 다른 엄마들과의 교류도 없고, 한국처럼 엄마들 사이의 단톡방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여기서 어린시절을 보내지도 않았다. 주노는 주양육자가 한국인인 환경에서 자라 프랑스 사회에서 사회 생활을 배운다. 알게 모르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사이에서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다가 점점 집과 사회를, 엄마와의 세상과 외의 세상을 구분하고 분리하는 법을 배우겠지.

아이를 키우며 외롭다는 생각이 때가 있다. 친구와 가족의 부재로 느끼는 개인의 외로움이야 이제는 인이 박혀 괜찮다. 그런데 이젠 내가 이룬 가정 안에서조차 가끔씩 그것을 느낀다. 님과 주노 둘이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프랑스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할때,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은데 사람이 먹지 않으니 결국 메뉴를 바꿀때, 혼자 매운 떡볶이 해서 먹으며 행복해는 하지만 나눌 사람이 없을때의 쓸쓸함.

언젠가 아이가 중학생이된 한국인 어머니를 만난적이 있다. 그 분은 아이의 학교 숙제를 봐줄 없게되는 시점이 오고 그것을 남편이 전적으로 전담하게 되는 때가 오게 되는데 그게 슬프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렇게되는게 조금은 서글펐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프랑스와 한국은 서로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다른 교육 방식을 차용할 때가 있다. 나눗셈이나 곱셈을 하는 방식 조차 다른 것을 보고 아, 내가 아이에게 배워야할 판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고등교육을 받게 될 수록, 한국에서 한국문학이나 한국사를 하는 것처럼 여기서는 프랑스의 역사나 프랑스 문학을 공부할터이니, 생소하기는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자라면서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이 되는건 한국 가정이든 다문화 가정이든 마찬가지일 같다. 다만 조금 겁이 나거나 아쉬울 수도 있다고 느끼는 것은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서조차 점점 한국의 색이 희미해지는데 주노에게는 끈을 놓지 않고 가져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개의 문화를 동등하게 나란히 가져가는 것이 지금도 버거운데, 아이가 자아를 굳건히 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나 힘들까.
문득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라고 했던 영화 GO 대사가 떠오른다. 이름을 지우고 국적을 지우고 나로 살아가는 나날이 되려면 나를 들여다보고 알아야겠지. 그건 나에게도 주노에게도 해당되는 커다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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