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아이.

그것에 대한 한탄의 기록.

by 몽아무르

두살의 주노


주노의 어린이집 가기 싫어요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어린이집에 다닌지 1년 반인데 지난 7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울고 불고 떼썼다. 어제는 강도가 겪은 최고였다. 아침부터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초콜릿과 칭찬 스티커를 주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주노는 동의하지 못하는) 어린이집의 장점을 나열했다. 엄마는 일하러 가야하서 어린이집에 밖에 없다며 의무화 시켜주었다. 가기 싫은 마음 알고 있지만 주노가 용기를 내야할 때도 있다며 안아주었다. 그리고 자꾸 이렇게 떼쓸거냐며 화내고 한숨도 쉬었다.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다. 평소 걷기 좋아하는 아이가 갑자기 유모차에 누워가겠다고 했다. 아이는 유모차에 누워서 뚜껑을 닫아달라고 했고 두두로 눈을 가렸다. 정말 가기 싫은 장소에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유모차에 어디냐 싶어서 어린이집으로 냉큼 향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려주었다. 아이는 울었다. 화를 냈다. 떼를 썼다. 나는 다시, 집에서 했던 모든 회유와 협박과 공감을 반복했다.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지나다니며 우리를 보았고, 아이를 데리고 부모들이 우리를 지났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고 떼쓰는 아이와 실갱이 하는 것에 진땀이 났다. 이상 협상이나 설득은 어렵겠다고 생각해 무력을 썼다. 아이의 손을 잡아 끌어 중문을 넘어서려고 했는데 아이는 내게 끌리지 않으려고 두발로 버텼다. 결국 아이를 들어 올려 중문을 넘어섰다. 이제 교실 문으로 들어가야했다. 아이는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나는 그런 상태의 아이를 어린이집 교실에 내팽개치고 돌아서고 싶지가 않았다. 어린이집에 억지로 가든 자의로 가든 어쨌든 진정이 상태에서 이따 만나자고 인사하고 싶었다. 나는 다시 바깥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정말 애원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설득했다. 물론 아이는 납득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싫은게 어린이집은 같았다. 이렇게까지해서 싫다는 아이를 보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이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야한다고 주장한지라 그것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럼 아이와 기싸움에서 지는 것일테니 말이다. 나는 우는 아이를 무시하는 작전을 택했다.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는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것을 알자 모든 노력이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한 같았다. 삼십분을 울고 불고 하던 아이가 드디어 무시한지 일분도 되지 않아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엄마. 쪽쪽이 주세요.”
나는 아이가 진정했다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가면 닦아서 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순순히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가 쪽쪽이를 입에 물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거짓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이의 억지 미소와 붉게 오른 얼굴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일관되게 단체 생활이 싫은거면 뭔가 아이 특성상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아이가 2년이 지나도록 장점을 찾지 못한 활동을, 사회 생활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계속 강요하는 밖에는 방법이 없을까. 사회 생활에 대한 다른 대안은 없을까. 하루종일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보냈다. 그런데 아이를 찾으러 가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복잡한 마음을 얹어주셨다.

어떤 아이가 주노를 물었어요.”
싫다는 억지로, 온갖 실갱이 끝에 보냈는데 아이는 사건을 겪었다는 것이다. 주노는 마음이 민감한 아이라 어떤 사건을 겪으면 그게 깊고 진하게 남는 아이다. 어린이집에서 누가 자기를 밀었건 장난감을 뺐었건 어떤 아이들은 사소하게 넘길 그런 사건들, 나이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매일 벌어지는 그런 사건들도 주노에겐 크게 남아 다음날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 이게 무슨 절묘한 타이밍인가.

아이와 집에 가면서 사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아이가 먼저 말할때까지 기다려볼 요량이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물었다.


어린이집에 아주머니들이 와서 읽어주셨다며. 재밌었어?”

그게 다였다.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저녁을 먹고 시간이 되어서도 아이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의 침대 옆에 앉아 물었다.


오늘 누가 주노를 물었어?”

. 여기를 물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부엌방에 숨었어요.”

언젠가부터 주노는 어딜 다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구석에 들어가 숨어 혼자 우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 선생님은 주방놀이 구석에서 울고 있는 주노를 발견했겠지.

그리고 친구가 주노 책을 뺏어서 슬펐어요.”

그랬어? 많이 슬펐겠네.”

주노야. 근데. 친구가 주노를 아프게 하면 어디 숨지 말고 선생님께 이야기해. 그리고 친구에게 안돼! 하고 큰소리로 말해야해. 그래야 친구가 주노 괴롭히지 않아.”

선생님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해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아이는 선생님 없는데서 너를 괴롭힐 수도 있어. 네가 해야지 이상 괴롭히지 않아. 크게 안돼! 라고 말하면 주노가 용감한 사람이란걸 아니까.”

주노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주노를 물은 아이가 주노에게 사과를 했는지 어린이집 선생님께 묻지도 못했다. 당시에는 그저 싫다는 억지로 보냈더니 이건 무슨 날벼락이지. 내일은 어떻게 보내. 라는 생각과 정말 싫은 장소에 억지로 있는건데 속상한 일까지 당해버린 아이의 마음이 많이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되는 마음만 가득했더랬다. 이성적으로 사건을 듣고 처리했어야했는데. 그래야 내가 아이를 보호해줄 있는데. 엄마라는 내가 이리 어리버리하니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줄 수 있겠나. 너무 미안했다.

오늘 아침. 아이는 어김없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리고 교실에서 통곡을 했다. 정말 모르겠다. 매일 싫다고 우는 아이를 정말 억지로 보내야하는걸까. 어릴적 수영 수업이 생각났다. 엄마는 수영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던 나를 수영교실에 보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는데 수영 교실이 정말 지옥같았다. 처음 수영 교실에서 입수를 했을 공포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물에 들어가기 무서워하던 나를 선생님은 억지로 입수시켰고 나는 나이에도 이렇게 내가 죽는구나 생각하다가 앞에 있는 남자아이의 수영팬티를 잡고 일어섰더랬다. 파란 속의 남자아이 수영 팬티가 아직도 앞에 생생하다. 나는 수영교실이 너무 싫었지만 엄마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꾸역꾸역 수영교실에 갔고 지금의 나는 수영을 못한다. 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주노에게 어린이집은 어떤 존재이고 이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나는 주노에게 옳은, 맞는 선택을 하고 있는걸까. 사람들은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걸 헤아리면서 때로는 강하게 의무를 지우기도하고 때로는 아이의 특성에 따라 남들과는 다른 방식을 택하기도 해야한다. 주노가 어린이집에 가는 다수의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면? 이렇게 계속 아이에게 어린이집이라는 형태의 사회생활을 강요해야할까? 그렇다고 인간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할 기회를 박탈할 수도 없는 아닌가? 어린시절에 많이,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당하고 살았던 나도, 어쨌든 정글에서 많은 눈물을 뿌리고, 저금통의 돈을 훔쳐 가져다 바치며 살아남았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지 않았는가. 정말이지 답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하루도 빼지 않고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밀어넣는 일은 너무 우울하다는 것이다. 영혼이 검게 타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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