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카메라가 된 아버지의 카메라.

그리고 그것을 쥔 나의 아들.

by 몽아무르

두살의 주노.


결혼 전에 방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낡은 노트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고지식하며 엄한 사람이었다. 영화와 음악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딸에게 공부를 해야한다는 이유로 주말의 명화를 금하셨고, 나를 문화 행사에 데려가본 일 조차도 없으셨다. 나를 영화관에 처음 데려간 것은 부모님이 아닌 학교 단체관람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밖에 모르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만하고 경솔하지만 그랬다. 때의 나는 나의 열정만이 엄청 대단한 알고 사는 청춘이었으니까.

아버지의 노트에는 시와 비슷한 짧은 글들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격정적이었다. 이후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차근히 발견할 있게 되었다. 내가 대학 시절 쓰던 니콘 fm2 필름 카메라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나는 그저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니까 이걸 가지고 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아버지는 나처럼 사진에 관심이 있었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회사와 자식에게 시간을 할애하니 그걸 들고 나갈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음악을 들으신다. 클래식, 오래된 팝송이나 한국 가요가 아버지가 자주 듣는 음악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라디오를 트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그저 무심히 지나치고 내게 엄한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만 속에 담아두었다. 나와 관련된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하면서 아버지가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하는 모습은 무심히 지나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형원이라는 인간의 모습을 하나씩 찾을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하다. 집에는 너무 많아 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내게는 그 책들이 공기마냥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는지, 근래 식탁위에 놓인 책이 무엇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상의 모습이었다. 전에는 이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았을까. 아마 나에겐 삶이,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중요했나보다.

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필름 카메라를 구석에 넣어두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 짐을 정리하던 어느날 님이 카메라를 꺼내 장식용으로 놔두자고 했다. 나는 이제는 쓸모없게 (?) 카메라를 보며 선뜻 그러라고 했다. 아마 이십대의 나였다면 애지중지 먼지 타게 가방에 고이 모셔두자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반위에 놓인 카메라에 주노가 관심을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직 한쪽 감는 것도 못하는 아이지만 필름을 감고 셔터를 누르는게 재밌는지 한참을 사진 찍는 흉내를 내었다. 아버지와 만큼이나 아니 훨씬 사진을 좋아하는 님이 그런 주노와 함께 사진기를 들고 놀아주었다. 아버지와 나의 젊음이 담긴 카메라를 좋아하는 주노를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버지가, 적도 없는 젊은 시절의 뜨거운 아버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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