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것은 평온일까 평정일까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

by 감자

거주지와 일하는 환경이 바뀐 지 이제 곧 두 달이 된다. 원래도 변화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딜 가나 꽤 빠르게 적응한다고 생각했는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 이제는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체념'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야 적응하지 못하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려운 나이니까 적응이 되지 않더라도 체념하고 포기하는 순간이 늘어난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방황하다가 지난주부터는 '모닝페이지'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미라클 모닝도 며칠 겨우 하다 때려친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 본 사람들이 다 좋다는데, 게다가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여둘톡'의 김하나 작가님도 몇 년째 하고 있다며 모닝페이지의 장점을 늘어놓으시니 속는 셈치고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미라클 모닝은 원래 기상 시간에서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차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반면 모닝페이지는 30분 정도만 일찍 일어나면 될 것 같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직장인에게 아침의 10분은 어마어마한 차이인데, 무려 30분을 더 잘 수 있다니. 못할 것도 없지. 모닝페이지를 소개한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모닝페이지를 세 쪽은 쓰라고 소개한다는데, 아침에 그렇게 했다가는 금세 포기할 것 같았다. 계획이 거창할수록 포기도 빠른 법이니.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한 쪽으로 스스로 합의했다.


그동안은 아침에 알람을 듣고 눈을 떠서 메신저 연락을 확인하고 물 한 잔 마시며 내가 자는 사이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나 뉴스를 간단히 확인했다. 그런데 뭐, 아침에 눈 뜨자마자 45분 정도가 뇌가 세팅되는 황금시간대라나? '코르티솔 피크 시간'이라고 기상 직후 30~45분 사이 코르티솔(각성 호르몬)이 급상승하는데 이 시간에 입력된 감정이나 정보가 하루의 '기본 톤'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뉴스나 SNS를 확인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눈 뜨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쓰라는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을 따라 책상 앞에 바로 앉아 노트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내려가는 행위를 시작해보았다.


주로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 꿈에서 있었던 일(기억나는 것만)을 쓰다가 쓸 말이 없으면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아티스트 웨이>에서 안내해 준 대로 쓸 말이 없다는 문장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두 세 줄 정도 남으면 긍정확언의 문장을 적었다. 오늘 하루 내가 바라는 상황 같은 것. 내가 주로 쓰는 문장들에는 대체로 '평온'이라는 단어들이 포함됐다. '회사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길.' 혹은 '평온한 하루를 보내길' 같은. 평상시에도 회사 내에서 일 때문에 메신저를 하다가도 용건의 끝에 종종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문장을 붙여 마무리하고는 했다. 지독하게 '평온'의 상태를 원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한 평온은 무엇이었냐 하면, 마음의 동요가 일 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던 것 같다. 크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일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만 있는 그런 상황. 아침마다 모닝페이지에 주문처럼 평온이라는 단어를 썼던 건, 오늘도 별일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적당히 처리하고 퇴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평온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책을 읽다 '평정'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평온'과 '평정'. 평정은 대체로 '평정심을 유지하다'라는 표현을 쓸 때가 아니면 내가 잘 쓰지 않는 단어였다. 같은 '평(平)'이라는 한자를 쓰는 두 단어,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평온.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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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검색해보니, 사전적 정의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봐도 관련된 글을 찾을 수 없다. 이럴 땐 챗gpt에게도 물어본다.


평온과 평정.png


요약하자면, '평온'은 내 마음도 외부 환경도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이고 '평정'은 외부 환경에 의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슷해보이는 두 단어는 하나는 상태를, 하나는 과정을 나타낸다. 이 차이를 아는 지금, 나는 다음 모닝페이지에 '평온한 하루가 되길'이라는 문장과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이라는 문장 중 어떤 것을 쓰게 될까?



자기계발적 측면에서 보면 후자가 적절해보인다. 집에서라면 모를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회사에서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어른스럽고 멋져보이는가. 갖고 싶은 능력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자료 요청이라든지, 상사의 지시에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그렇지만 요즘의 내가 바라는 것은 '평온'이다. 평온하고 싶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도 내 마음에도 변화와 기복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매일 아침, 나는 주문처럼 '평온'이라는 단어를 쓸 테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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