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과 제로웨이스트는 한 끗 차이

공간이 내 일상에 미치는 영향

by 감자

요즘 물건을 들이는 일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8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임시'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이면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 집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떠날 때도 내 차에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정도의 최소한의 짐으로 살고 싶었다. 미니멀리즘으로 살고 싶은 이 마음은, 자연스레 '제로 웨이스트'로 사는 삶의 방향으로 이어졌다. 물건을 사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각종 쓰레기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임시로 보관할 만한 공간이 없는 작은 원룸인 데다 이사하는 순간에 어중간하게 남은 물건들을 챙겨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이런 마음 덕분에 몇 가지 생활 습관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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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는 사무실에서 종이컵 대용으로 쓰던 텀블러를 출퇴근할 때도, 잠시 외출할 때도 항상 들고 다닌다. 회사 카페에는 '음료 쿠폰'이 아니라 '텀블러 쿠폰'을 주는데, 음료를 살 때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텀블러 할인과 동시에 텀블러 사용에 대해 스탬프를 찍어주는 것이다. 얼마 전, 열 개의 스탬프를 모아 출근길 공짜 커피를 마셨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 이걸 고구마에게 자랑했더니, 고구마는 내가 멋지다며 내게 텀블러를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너무 고마운 마음이지만, 사양했다. 예전에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살기 위해 사들이는 수많은 에코백과 텀블러가 결국은 또 다른 생산과 소비를 불러일으킨다는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두 개의 텀블러가 있어 설거지하는 것이 그다지 번거롭지 않아 더 이상의 텀블러는 필요하지 않았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외출 중간에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는 일도 줄었다. 웬만한 공공장소에는 정수기가 비치되어 있으니, 챙겨나간 물을 다 마셔도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소소하게 생수나 보리음료를 사는 데 쓰는 지출이 줄었다. 페트병 쓰레기를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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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와 함께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은 손수건이다. 세종으로 올 때 집에 있는 손수건 중, 가지고 다니기에 머쓱... 하지 않은 디자인의 손수건을 세 개 챙겨 왔는데 이것 역시 돌려가며 잘 쓰고 있다.


여름날 출퇴근을 걸어서 하다 보니, 조금만 걸어도 금방 땀이 난다. 예전이었다면 집을 나서기 전에 티슈를 마구 뽑아 주머니나 가방에 넣거나, 여행용 티슈를 챙겨 다녔을 텐데. 요즘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다. 그러다 보니 늘 주머니가 있는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주머니에 손수건이 있다고 생각하면 땀을 흘려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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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러 나갈 때는 장바구니를 챙긴다. 올해 봄, 제주도에 갔을 때 하리보 박물관에서 동생이 사준 귀여운 장바구니 � 착착 접으면 손바닥 크기라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기도, 가방에 넣어 다니기도 좋다.

불필요하게 종량제 봉투를 사거나, 쇼핑백을 살 필요도 없다. 짱짱한 소재이다 보니, 뭘 많이 사도 종이가 뜯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집에서는?

주방용 세제 대신 설거지용 비누를 사서 쓴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세제를 쓸 때에도, 되도록이면 리필용 세제를 사서 채워서 쓰긴 했는데... 리필용 세제가 담긴 비닐 역시 부피가 제법 큰 쓰레기로 남는다.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세제가 애매하게 남아있다면? 수많은 짐 속에서 액체가 담긴 통이 눌려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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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에서 2천 원을 주고 산 설거지용 비누는, 부피도 작고 비누 하나 들어갈 작은 종이 상자에 담겨 있어 구입하면서 발생하는 쓰레기라고는 상자뿐이다. 제품을 다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사할 때 혹시 남는다면, 실리콘 백이나 반찬통에 담아 가면 된다. 세정력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설거지 비누로 거품을 충분히 내면 뽀득뽀득 잘 닦인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설거지 비누를 사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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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용하는 것은 바로 브리타 정수기 �매일 무리 없이 2L 이상 물을 마시는 나로서는... 직장 때문에 다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생수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를 또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수기를 설치하는 것은 귀찮으면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물을 끓여 먹자니 그것도 너무 번거로웠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생수 주문을 쉽게 할 수 있으니 물을 사 먹을까 고민도 해봤지만 수북하게 쌓일 페트병을 떠올리니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마침, 예전에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브리타 정수기가 생각났고 물맛에 그렇게 까다로운 편은 아니라서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인터넷으로 바로 주문했다. 결론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필터만 한 달에 한 번 갈아주면 되고, 필터는 모아뒀다가 다시 보낼 수도 있으니 쓰레기라고는 처음 브리타를 사면 오는 박스와 조그만 필터가 담긴 비닐 정도? 정수되는 속도도 기대했던 것보다 빨라 유리병에 물을 담아 하나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평상시에는 그냥 실온에 두고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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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늘 다녀온 곳에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판매하는 매대가 있었다. 실리콘 빨대, 리사이클 노트, 수세미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구경하다 수세미를 바꿀 때가 된 김에 천연 수세미를 구매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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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까끌까끌해 보이지만 물에 적시니 적당히 도톰하게 불어났다. 설거지 비누를 묻히니 거품도 제법 잘 나고. 원래 쓰던 수세미에 비하면 조금 뻣뻣한 느낌이 있지만, 쓰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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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더해 장바구니와 함께 들고 다닐 네트망...(?)과 주머니도 구입했다. 가격도 2-3천 원 정도로 저렴했는데, 일회용 비닐 대신 사용해보려고 한다. 사실, 오늘 마트에 갈 때 챙겨갔는데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야채나 과일들은 이미 랩핑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가져간 것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시장에 가서 과일 살 때 검은 비닐봉지 대신 담기에 좋을 것 같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사실 이런 개인의 노력이 지구를 지키는 데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개개인들이 조그맣게 한 노력들에 비해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나 탄소가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러니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맞을까. 뭐라도 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냉소적인 태도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런 조그만 노력들이 나 스스로의 만족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지켜보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좁든 넓든 웬만하면 꼭 필요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물건들, 그리고 다 쓰고 나면 지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물건들을 사용해보려 한다. 무언가로 꽉 채워진 공간보다는, 아무래도 여백이 있는 공간들이 더 멋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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