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께서 외상센터에서 돌아오셨다. 오늘은 이상하게 한가한 날이라며 멍하니 서 있던 실습생들에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환자는 골반 쪽에 출혈이 있었다. 동맥이 찢어져 지혈하지 않으면 혈압이 40까지 낮아질 정도로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고 한다. 찢어진 부위보다 심장에서 가까운 쪽 혈관에 풍선을 넣어 먼저 피가 새는 걸 막았다고 하셨다.
피가 흐르는 걸 막으면 출혈은 줄일 수 있겠지만, 혈액을 공급받지 못하는 기관들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콩팥은 2시간까지도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머리 쪽은 길어야 15분이다. 다행히 환자는 다리 쪽 혈관이 찢어져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금세 치료를 받아 응급상황은 해결됐다.
교수님은 한마디 덧붙이셨다.
"환자가 낮에 와서 다행이지 밤이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겠다."
보통 돌아가며 당직이 있을 텐데 밤이면 더 위험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 왜 그런지 여쭤보았다. 의사가 병원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그사이에 환자가 버티질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전부였다. 간단했다.
슬의생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산모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빨리 애를 꺼내야 하는데 레지던트는 수술을 해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에선 교수님이 오기 전까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레지던트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때 산모는 어땠을까. 극에서야 산모와 아이 둘 다 무사했지만, 현실에선 산모도 출혈로 죽고, 아이도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당직인 의사는 매일 병원에서 자야 하냐는 생각이 든다. 당직이 1년에 한 번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삶이 있는데 너무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그럼 외상센터에 교대근무로 공백이 생기지 않게 의사를 고용하는 건 어떨까. 3명을 고용해서 3교대를 하는 거다. 근데 이건 좀 과하다. 20분 안에 특수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많지 않을 텐데 의사 3명을 고용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밤에 다치면 죽을 수도 있다니. 내게 일어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만 해결할 방법은 딱히 없어 보였다. 결국 ‘돈보다 생명을’이란 말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생명을 구하는 데 꼭 필요한 게 돈이라는 사실을 왜곡하는 지독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정치인이 자주 돈보다 생명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마디 꼭 덧붙이면 좋겠다. ‘그러니 정부에서 예산을 반드시 투자하겠다.’ 왜냐하면 우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고 이건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