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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민 Jun 02. 2020

약은 약사에게, 수술은 이발사에게

중세에는 이발사가 수술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의사들은 외과 수술이 천하다고 생각했고, 날카로운 칼을 다루는 직업이 이발사밖에 없었기에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발사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과 의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은 루이 14세의 치질 때문이었다. 루이 14세의 수석 외과 의사(이발사)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진행했고 그의 치질은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 공로를 치하하고자 루이 14세는 수석 이발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고, 그는 실력 있는 이발사에게 의사 면허를 줄 수 있도록 하고 이발사와 외과 의사를 완전히 분리하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의사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지만, 이를 시발점으로 유럽 전역에 외과 아카데미가 생기고 우리가 생각하는 외과 의사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수술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오늘 참관한 안과 수술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현미경을 보며 수술을 집도하셨고, 학생들은 큰 모니터로 안구에 수많은 수술기구가 들어가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외과 실습을 돌 때는 적어도 교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눈으로 볼 수 있었는데, 안과 수술은 그 정교함에 내가 저걸 배운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게다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력을 되살리는 수술이라니 그 의미도 다르게 다가왔다.  


17세기 프랑스의 권력자가 만들어낸 관점의 변화를 오늘 경험한 것이다. 만약 의사들이 여전히 수술은 천하다는 관점을 고수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노년에 눈이 안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사회를 지배하는 관점을 의심하고 바꾸려는 행위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시대마다 큰 변화를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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