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 꿈속으로 2

바꾸려고 노력해 보세요

by 민휴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비교적 가까운 산에 있는 펜션이라 멀리 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름 유명한 펜션이라 예약이 쉽지 않았지만, 여행은 여행이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다 급경사에서 마주 내려오던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지수의 차로 달려들었다. 편도 1차선 도로의 좁다란 산길이라 차를 피하면 승아가 위험한 상황이다. 엄마의 본능으로 핸들을 많이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꽉 붙잡고 진행했다.

“승아야! 눈 감아!.”

지수는 한 팔로 승아의 가슴을 의자에 밀착시켰다.

트럭도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 같았지만,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사고로 지수는 다리를 다쳐서 재활훈련 후에도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제일은 밤마다 꿈속에 그날로 간다. 즐거운 휴가를 보내는 꿈을 꾸다가 깨곤 하는 것이다. 승아는 여전히 철없는 아이처럼 명랑하지만 요즘 아이답지 않게 말수가 적어지고, 스마트폰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좋아하고 늘 밝은 표정이다. 지수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승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올해 3월부터는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날이 늘어났다. 게다가 장애를 갖게 되면서 복직을 못 하며 힘들어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제일에게는 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반년째 다니는 심박사의 신경정신과는 오늘도 한산하다.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많은 손님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얀 단발의 심박사는 어쩐지 신비스러운 기운을 풍긴다.

“요새도 꿈을 꾸시나요?”

“네, 2~3일에 한 번 정도요.”

“매번 말씀드렸지만, 선생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요. 아내가 휠체어를 탄 모습을 보면...”

“아내 분도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을 겁니다.”

“아내가 요새 말수가 줄어서 걱정이 돼요. 계획했던 복직도 못 하고...”

“제가 알아요. 그래도 승아를 지켜냈잖아요. 엄마는 그런 힘으로 살 수 있답니다.”

“정말 그렇게 믿어도 될까요”

“그날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지요.”

“그럼, 꿈속에서 노력해 보시지요?”

“네! 그게 가능할까요?”

“꿈이라는 게 비현실적이고,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될 것도 같은데요.”

“의사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농담도 하시나요?”

“마음으로 보면 과거도 미래도 다 보이지 않을까요?”

“마취 환자들이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꿈속에서 노력이라니...”

“오늘은 좀 특별한 약을 드려볼게요. 바꾸려고 노력해 보세요.”

돌아서 나오는 제일의 등 뒤로 심박사의 농담 같은 말이 날아왔다.

제일은 꿈이라는 걸 알 것 같다. 집안 분위기가 들떠 보인다. 지수는 펜션에서 필요한 세면도구, 여벌 옷, 화장지, 구급약 상자 등 필요한 물품들을 적은 메모를 확인하며 짐을 확인했다. 승아는 수영복, 샌들, 튜브 등을 챙기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제일은 보이지 않는 자신을 찾으려고 방안을 살피지만, 자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계를 보던 지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승아야! 아빠가 좀 늦으실 것 같아. 우리 먼저 출발하자!”

“아이, 아빠랑 함께 가면 더 좋을 텐데.”

“가까우니까 금방 오실 거야. 우리가 먼저 가서 물놀이 준비하고 있자.”

“알았어.”

승아가 시무룩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제일은 갑자기 “바꾸려고 노력해 보세요”라고 말하던 심박사의 말이 생각났다.


제일은 애써 군청 민원실을 떠올렸다. 부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김 씨는 핏대를 올리고 있다. 이런 민원인을 보면, 마취에서 깨어나는 환자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님! 그게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뭐요! 지금 주먹구구라고 했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이고, 대표님! 왜 그러세요."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겨울에는 하우스에 보온커튼을 설치해야 하는데 또 내 돈으로 다 해야 하냐고?"

"다음 주에 제가 산업계 담당자한테 전화드리라고 할게요. 민원실에서는 일일이 알 수가 없으니까요."

한 발 빼고 있던 김 팀장이 그때야 나타나 아는 체를 한다.

"형님! 우리 박 주사가 잘 알아서 연결해 줄 거요. 오늘은 이만합시다."

김 팀장이 손짓으로 어서 가라고 재촉한다. 제일은 초조한 마음으로 지수에게 전화를 건다.

"어! 여보! 어쩐 일이야?“

"지수야! 나, 방금 청에서 나왔어. 출발하지 말고 기다려 줘! 꼭!"

지수의 웃음소리와 승아가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 제일은 지수와 승아를 양팔에 껴안는다.


등줄기가 젖도록 긴 꿈을 꾼 제일은 개운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 아내가 끓여 놓은 된장국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벌써 아침상을 차려 놓고 식탁에 앉아 있던 지수가 흰 종이를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경정신과 경력자 레지던트 합격증이네? 우와! 축하해! 넌 최고의 의사가 될 거야!"

제일은 지수의 모습이 심박사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자꾸 웃음이 삐져나왔다.

‘바꾸려고 노력해 보세요.’

심박사의 말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